바다와 함께 춤을

바다와 함께 춤을

 

 

온 세상 한 바퀴 돌아

사나이 할 일 다 마치고 돌아와선

그래도 바다가 못 잊어 하면

조선소造船所가 환히 보이는 거제도 바닷가에

작은 집 짓고

바다랑 도란도란 얘기나 하며 살겠네.

 

심심하면 가끔 조선소造船所에 가서

큰 배 만드는 거나 보면서

그 배 커다란 몸을 이끌고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이나 보면서

낮은 돌담에 장미 대신 해당화를 올리고

바다랑 지난 세월 사랑 얘기나 하며 살겠네.

 

저녁에 인생처럼 황혼이 깔리는

바다에 취해

막걸리 몇 잔 마시고 바다를 살며시 안아주면

, 어린 곤충처럼

파르르 몸을 떠는 바다

내 몸 깊은 곳에 알을 낳는 바다.

 

먼 수평선에 운명처럼 달이 떠오르면

은빛 물결이 되리라

바다와 한 몸이 되어 춤을 추리라.

아픔도 서러움도 달빛으로 씻어

온 바다 흥타령으로 푸르게 일어서게

플라멩코 춤보다 더 격정激情적인 춤을 추리라.

 

 

posted by 청라

덕봉산에 올라서

덕봉산에 올라서

 

 

바다 곁에 오래 살았다고

모두 바다의 친구라고 할까

 

덕봉산에 오르면

마음의 때를 씻고 또 씻어 주는

천 년의 파도 소리

 

미움이 녹고 사랑도 녹고

내 몸이 물빛으로 투명해져서

 

갈매기 속삭이는 말을 알아들으니

바다는 다가와

뜨겁게 포옹을 한다.

 

 

posted by 청라

태종대 안개꽃

태종대 안개꽃

 

 

살다가 가끔 막막해지면

태종대는

해무海霧를 자욱히 피워

제 스스로를 지운다.

 

병풍바위도 신선대도

주전자 섬도

사월 안개꽃 속에서는

향기만 남는다.

 

안개 덮인 눈으로 세상을 보면

바다에는 길이 없다.

파도 소리만 거칠어

자살바위 위에서 들 뛰어내리지만

 

사람들아!

삶의 안개꽃 지고 나면

바다는 모두 길이다.

세상 어디든지 갈 수가 있다.

 

posted by 청라

기성리에서 일 년

기성리에서 일 년

 

 

바다에 중독되어

기성리에서 일 년 살았다.

달밤에 백사장에 나가

해심海心에 모래를 뿌리면

천 개의 근심이 달과 함께 깨어졌다.

척산천으로 떠내려 온

태백산 그림자들이

바다로 함께 가자고 유혹할 때 쯤

파도가 하는 말들이

선명하게 귀에 들어왔다.

바다를 사랑하는 덴 약이 없다.

인연을 접은 뒤

사람들 속에서 더욱 외로워질 때

나는 추억의 스위치를 올리고

세상에서 가장 감미로운 노래

기성리 앞 바다 파도 소리를 듣는다.

 

posted by 청라

죽변항

죽변항

 

 

바닷길 가다가 폭풍에 막혀

죽변항으로 들어가면

죽변항은 등대 불빛을 마중 보낸다.

 

어머니 같이 따뜻하다.

생선 말리는 냄새 밥 짓는 연기처럼

손 까불러서

 

봉평해수욕장 모래밭과

조릿대 나무숲이 고향 같은

, 깃들어 살고 싶은 마을

 

저녁마다 갈매기 나를 부르러 와도

죽변항 뒷산 그림자

나를 잡아준 손이 너무도 따듯해서

 

다시 고단한 삶의 길로 나아가기 전에

오래 날개를 쉰다.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마을

 

 

posted by 청라

남포동은 잠들지 않는다

 

 

퇴역 마도로스 김 씨는 몸속에 바다를 감추고 산다.

술에 먹히기 전까지는 말투에서

꽃냄새가 풍기지만

그의 우리에 가두었던 바다가 풀려나오면

남포동은 갑자기 해일海溢에 덮여 바다가 된다.

 

남포동 사나이는

마도로스 아니라도 모두 낭만에 산다.

쿠마나 비치에서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며

음페케토니에서의 모험 이야기

그들은 언제나 허황된 추억에도 같이 춤을 춘다.

 

자갈치 횟집에 가서 바다의 살점을 씹을 때나

건어물 상회에서

흘러간 세월의 박제剝製를 쓰다듬을 때

그들의 눈에서 광기처럼 일어나는

산더미 같은 파도

 

한 번 바다의 사나이는 영원한 바다의 사나이

바다와의 인연은 운명이었다.

파낼 수가 없다.

산 속으로 도망을 쳐도 사람들 사이에 몸을 묻어도

핏속에서 잉잉대며 바다가 부르는 소리

 

밤이면 추억들이

더 화려한 오색 등으로 피어나는 곳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꿀벌처럼 모여 사는 곳

부두에 바닷물이 마르지 않는 한

남포동은 잠들지 않는다. 항시 깨어서 출렁거린다.

 

 

 

posted by 청라

달빛 바다

달빛 바다

 

 

바다는 바람의 목말을 탔다.

힘껏 뛰어올랐다.

언뜻언뜻 보이는 파도의 속살마다

만 개의 알을 낳는 달

부화孵化하는 빛의 입자들이

정어리마냥 퍼덕인다,

샤르랑 샤르랑

소리의 덩굴들이 온 바다로 퍼져 간다.

달 뜬 바다는

온통 빛의 환호성이다.

 

posted by 청라

보길도 낚시질

보길도 낚시질

 

 

모두 벗고 왔으면

안개 같은 세사世事는 바닷바람에 날려버리자.

오래 놓아뒀던 낚싯대 어깨에 걸쳐 메고

바다의 마음이나 낚으러 가자.

 

고산孤山 선생 외로움을 즐기던 바위에 앉아

안개 자욱한 새벽 동쪽 바다에 낚싯줄을 던지니

끌려나오는 건 눈부신 일출日出

금빛으로 번지는 삶의 여유

 

휴대폰을 버리고 왔더니

바다엔 자유가 넘쳐나네.

정들었던 모든 것 육지에 벗어놓고

낯설어 더욱 정겨운 바다와 산들

 

오늘 아침 끼니는 파돗소리로 때우고

점심에는 예송리에 가서

소주 한 잔에

신선한 바다의 살점이나 씹어 볼까나.

 

바다로 올 때 다 버리지 못한

세상 근심의 찌꺼기들

조금씩 떼어내어 바늘에 꿰어 던지다보면

! 구름처럼 바람처럼 빈 몸이 될까.

 

오늘 밤엔 바다의 노래를 미끼로 삼아

서녘으로 가려는

낙월落月이나 건져야겠다.

 

 

posted by 청라

해후

해후

 

 

파도는 와아 하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온다.

 

달려오는 파도의 뒤꿈치에선

소용돌이처럼

물거품이 일고 있다

 

물거품처럼 부서진 사랑

덧없다고 말하지 마라

 

오랜 세월 건너 찾아오는 나를

넘자 온몸으로

반겨주는 걸 보면

 

바다는 가진 게 정 뿐이다

posted by 청라

한려수도의 봄

한려수도의 봄

 

 

학동 해변에서 밀물소리를 듣는다.

 

남쪽 바다엔 봄이 일찍 와서

몽돌 위를 타고 넘는

밀물소리에

질펀한 가락이 묻어있다.

 

도다리쑥국 먹으러 온 바다 사내들은

막걸리 몇 잔에 안주 삼아

한려수도의 봄 얘기 한창인데

 

사투리마다 배어있는 갯냄새에는

동백꽃 향기 가득 피어난다.

 

입이 무거운 무인도에는

꽃들이 몰래 진단다.

 

막걸리 맛처럼 시금털털한

세상 험한 일들 씻으러

배타고 한 번 휭하니 돌다 올까나.

 

물안개 옅어지는 수평선 너머로

반갑게 손을 흔드는 섬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