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창 시집 해설>

 

 

밝고 맑고 깨달음의 향기가 생동하는 따뜻한 시편

                                                                        - 공 광 규

 

 

1.

 

엄기창 선생은 1975시문학으로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서울의 천둥』 『가슴에 묻은 이름』 『춤바위』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 『바다와 함께 춤을과 시조집 봄날에 기다리다』 『거꾸로 선 나무를 냈다. 대전광역시문화상 문학부문, 정훈문학상 대상, 대전문학상, 호승시문학상 대상, 하이트진로문학상 대상, 문학사랑 인터넷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은 대전문인협회 시분과 이사와 부회장, 문학사랑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PEN클럽 회원이다.

선생의 시들은 따뜻하다. 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행복해진다. 그의 시 문장은 밝고 맑고 아름답고 행복한 기운과 향기가 맴돈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현재가 참으로 추운 세상이라고 한다. 추운 이유가 정치판 때문이고 세상인심 때문이다. “서로 아껴주고 도와주고 끌어안아 주는 미덕이 있어야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모두 자기 욕심만 채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상에 그가 시집을 내놓는 이유다.

필자는 선생의 시집 속에서 꽃을 중심 화소로 하는 맑고 밝고 아름다운 심상의 시들과 아내를 대상으로 쓴 시, 어머니와 아버지를 호명한 시, 다수의 불교제재 시를 살펴보도록 한다.

 

2.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문장은 곧 그 사람이다. 일상의 산책길에서 어떻게 하면 오늘 아침/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환한 꽃을 달아줄 수 있을까”(<산책길에서>)를 고뇌하는 엄기창 선생의 시를 읽어가다 보면 꽃, 아름다움, 반짝임, 향기에 걸려 넘어진다. 넘어져서 한동안 꽃, 아름다움, 반짝임, 향기의 숲에 머물다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런 어휘들은 독자에게 행복한 울림을 가져다준다.

특히 선생의 시에는 꽃이 많이 출연한다. <사람의 향기>세상을 맑게 씻어주는 사람을 향기에 비유하고, <갈대와 나팔꽃>에서는 갈대를 감아 올라가서 꽃을 피우는 나팔꽃과 같이 흔들리는 모습을 아주 작은 것끼리도 서로 손을 잡아주면/ 큰 힘이 된다는 협력을 통한 동반상승을 강조한다. <환한 세상>에서는 인사를 잘 하는 처녀를 통해 작은 꽃잎이 모여 꽃밭이 되듯/ 반가운 인사가 모여/ 환한 세상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콘크리트 틈에서 피는 제비꽃에서 착상을 얻은 시가 <제비꽃에게>인데, 선생은 단단한 벽을 허물고 깃발 세운/ 네 눈빛만으로도 골목이 환하다, “너희들 웃음만으로도/ 온 세상이 생생하게 살아 오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명자꽃이 환하게 피었습니다.

 

절뚝거리며

한사코 도망가는 비둘기와

 

붕대를 들고

쫒아가는 소녀 하나

 

비둘기는 알 리가 없지요.

걱정스러운 소녀의 마음을

 

쫓기다 쫓기다

포르르 날아가는 비둘기 뒤로

 

소녀 울음만

명자꽃처럼 빨갛게 익었습니다.

- <사월 아침> 전문

 

<사월 아침>은 동화적 서정과 울림이 가득한 명품이다. 명자꽃이 핀 광장과 발가락이 잘려 절뚝거리며 사람을 피해 달아나는 비둘기. 붕대를 들고 비둘기를 쫓아가는 소녀의 모습. 소녀의 마음을 모르고 비둘기가 날아가자 울고 있는 소녀의 착한 심성이 빨간 꽃으로 핀 것이 명자꽃인 것이다. 비둘기와 소녀의 사건을 명자꽃으로 전환한 기교가 빛나는 시다.

<당신의 아픈 날을 감싸주라고>주름지고 멍투성이 수선화같이 늙은 아내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인생이 꽃피던 날상대를 헤아려주지 못한 것을 돌아보고 연민과 사랑을 바치는 아름다운 시다.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면 감흥이 남다를 것 같다.

 

귀뚜라미 소리가 깨워서

문득 눈을 떴습니다

시간의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와

당신의 잠든 얼굴에 눈물을 떨구게 합니다

영혼은 아이 때로 돌아갔지만

자글자글 주름에

멍투성이 수선화 같은 당신

꽃피던 날에는

당신의 아픔을 헤아릴 줄 몰랐습니다

겨릅대처럼 바싹 마른 다리에

이불을 덮어주면서

당신의 아픈 날을 감싸주라고

내가 태어났나 봅니다

- <당신의 아픈 날을 감싸주라고> 전문

 

이 시는 시집의 표제시다. 인생이 꽃피던 날, 한창 젊었을 때는 자신의 젊음을 뽐내고 발산하느라 상대의 아픔을 눈치 채지 못한다. 생동하는 기운이 빠지는 나이가 되어서야 자신을 객관화시켜 바라보게 되고, 그동안 배려하지 못했던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게 된다. “자글자글한 주름멍투성이 수선화” “겨릅대처럼 바싹 마른 다리는 현재의 늙고 치매에 걸린 가엾은 아내의 모습을 대유한다. 화자는 아내에게 이불을 덮어주면서 당신의 아픈 날을 감싸주라고/ 내가 태어났나 봅니다라며 자성을 통해 독자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꽃을 뿌려야 꽃이 피지><세한도를 사는 사내2>는 상당히 시사적이고 풍자적이다. 고희를 넘어 사회의 어른이 된 선생은 앞에 시에서 계속 하락하는 출산율 저조로 인한 인구 감소를 걱정한다. 국가의 미래가 인구 감소와 상관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초등학교 운동회에 참석한 경험을 통해 퀭한 운동장에/ 그믐달만큼/ 모인 아이들// 응원 소리도/ 측백나무 울타리를 넘어가다/ 금방 사그러졌다며 비판한 뒤 씨를 뿌려야/ 꽃이 피지라고 출생을 하지 않는 현재 세태를 비판한다. 시인은 이러다가 한 명의 아이조차 낳지 않아 텅 빈 운동장에서 잡초만 무성해질 대한민국을 보았다고 한다.

동백과 장미덩굴이 출연하는 시 <세한도에 사는 사내2>의 발상은 사뭇 유가적 지성으로 체화된 충청도인의 기개와 지사적 풍모까지 보여준다. 선비로서 인간의 마을이 무너지는것을 보고 분심에 차 있는 시인은 양심 있는 사람은 입을 열지 않고, 부자들은 돈을 쓰지 않고, 아이들은 더 이상 노인을 존중하지 않고,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꾸짖는다. 국가의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선비라면 귀를 막지 말고 세상이 부르면 문이 없어도 나와” “세상을 갈아엎으라고 강조한다. 사회개혁을 위한 실천을 추동한다. 문단에서 이런 기개가 사라진지 오래다.

 

3.

 

아마 부모를 시의 소재로 언급하지 않은 시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부모의 중요성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부모가 없으면 내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의 은혜가 크고 깊음을 설명하는 경전이 있는데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다.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친 경전이다.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업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須彌山)을 백천 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한다.

엄기창 선생의 시에서도 아버지, 어머니를 제재로 한 시가 여러 편 등장한다. 앞에 언급한 <남가섭암 불빛>을 비롯해 <동무 소나무> <어머니라는 이름> <동치미를 무치며>에서는 어머니를, <팔월의 눈> <겨울 허수아비> <아버지의 등>에는 아버지가 언급된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이름은

어머니다.

(중략)

어머니, 어머니

부를수록 그리워지는

세상에서 제일 향기로운 이름이 바로

어머니다.

- <어머니라는 이름> 부분

 

나이테 얼마나 헤집어야만

어머니 꾸중소리 거기 있을까.

 

고희 가까운 날

문득 그 나이테 언저리 그리워져

고향집에 찾아갔다.

- <동무 소나무> 부분

 

유년을 같이 보낸 고향은 어머니와 동격이다. 고향 하면 어머니가 생각나고, 어머니 하면 고향이 떠오른다. 이런 어머니는 경전에서 아이를 낳을 때는 38되의 응혈(凝血)을 흘리고 84말의 혈유(血乳)를 먹인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은혜가 한량 없는 것이다.

부를수록 그리워지고 세상에서 제일 향기로운 이름을 가진 시인의 어머니는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쪽진 머리와 흰 옥양목 치마저고리가 백목련 같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머니는 화자에게 보리 누룽지를 싸주셨고, 찬 서리가 내리는 날 장독대 앞에서 기도를 하다가 감기에 걸린 자애와 희생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화자가 타향에서 서러운 일을 당할 때마다 달려가고 싶은 품이다.

화자에게 어머니는 된장찌개 냄새처럼 제일 먼저 다가오는 존재다. 나이 많은 아들도 부모에게는 언제나 어린이다. 고희에 가까운 화자는 고향집을 찾아가면서 부끄럽게 살지 말라던 생전의 어머니의 꾸중소리를 떠올린다. 화자가 세파에 시달릴 때 제일 먼저 손을 잡아주었던 것이 어머니다. 현실에 없는 어머니를 대신해 화자는 고향의 소나무 가지를 회초리 삼아 끌어안고, 항상 부끄럽게 살지 말라는 한결 같은 어머니의 말씀을 회고한다.

 

그 날 아버지는 구급차를 타고

눈보라치는 연미산 고개를 넘으시면서

하얗게 덮인 금강의 백사장이며 빨랫줄처럼 흔들거리는

공산성의 성벽들을 샅샅이 눈에 담으셨다.

내가 이제 여기 또 올 수 있을지 몰라

아버지의 쉰 목소리에서 눈바람소리가 울렸다.

쉰아홉에 휘몰아친 팔월의 눈보라

간이 돌처럼 딱딱해져서

수술도 할 수 없다는 원장의 말이 떠올랐다

몇 마지기 땅뙈기로 아들 셋을 대학 보내며

꿈꾸었을

아버지의 무지개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나는 벌판처럼 쓸쓸해진 그의 시선을 피해

너무도 일찍 와버린 아버지의 겨울을 생각했다.

- <팔월의 눈> 부분

 

아버지는 집안을 떠받치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기둥과 같은 존재다. 이런 아버지들은 집안을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일으키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그러나 아무리 튼튼한 기둥도 언젠가는 무너지듯 아버지도 무너진다. 동시에 집안에 떠 있는 무지개는 사라진다. 이 시의 서사는 노송처럼 든든했던 화자의 아버지가 쉰아홉에 병을 얻어 구급차를 타고 연미산 고개를 넘어 병원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아버지의 눈에 마지막으로 담기는 금강의 백사장과 공산성의 성벽들, 아버지의 쉰 목소리가 스산하다. 가장인 아버지가 병을 얻으면 집안에 한여름에도 눈보라가 친다. 너무 일찍 와버린 눈보라, 팔월의 눈보라다. 화자는 아버지의 이른 병이 혹시 자신이 첫 월급으로 선물한 한약재가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을 한다.

엄기창 선생은 시 <겨울 허수아비>에서 겨울 빈 들에 서 있는 허수아비에서 하루 일을 다 마치고 황혼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아버지의 등>에서는 노송을 아버지의 등에 비유한다. 아버지는 웃음 속에 고뇌를 감추는 존재이며, 세파에 힘이 겨워도 표현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등이 되는 존재다. 화자는 생전의 아버지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음에도 아버지의 등이 될 수 있을까하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눈물이 반인 삶의 술잔을 앞에 두고 자신을 벼리고 벼리는 겸양을 시를 통해 보여준다.

 

4.

 

엄기창 선생의 시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불교제재의 시들이다. 불교는 중국을 통해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순서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배웠다. 그러나 축적된 연구 결과 한반도 남쪽 고대국가인 가야에는 이들 세 나라 보다 앞서 인도에서 해안을 통해 불교가 직접 건너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적어도 2천년 이상 불교가 이 땅에 와서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러니 우리 민족의 심성에 불교가 체화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충청도에 근거를 두고 있는 선생의 문장에서도 불교는 고스란히 문장에 자주 발현된다. 이를테면 <해우소에서> <산사에서의 밤> <고사古寺에서> <부적> <달빛 기도> <백마강 물새 울음> <대청호> <은적암 가는 길> <청우정에서> <남가섭암 불빛> <벌레의 뜰> <내 고향 가교리> <겨울 허수아비> 등의 시다. 선생의 불교는 어머니로부터 전승된 모태 신앙이다.

 

어머니 제사 지내러 늦은 날

회재를 넘어서면

철승산 꼭대기

남가섭암 불빛이 나를 반겨줍니다.

 

깜깜할수록 더 밝게

내 마음으로 건너옵니다.

 

등창만 앓아도 십이월 찬 새벽

눈 쌓인 비탈길 쌀 한 말 이고

남가섭암 오르시던 어머니

 

부엉이 울던 달밤

장독대 뒤에

물 한 사발 떠놓고 비시던

그 간절한 기도 때문에

 

이 아들 고희 넘어서도 무탈하게

시인이 되어

시 잘 씁니다.

 

제사 지내고 고향 떠나며 다시

회재에 올라서면

앞길 비춰주려고 불빛이 앞장섭니다.

- <남가섭암 불빛> 전문

 

화자가 어머니 제사를 지내러 화재를 넘어가면 철승산 남가섭암 불빛이 반짝반짝 마중 나온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거나 작은 우환이라도 생기면 어머니가 쌀을 이고 찾아가서 기도를 하던 암자다. 화자는 등창을 앓았을 때 어머니가 십이월 찬 새벽/ 눈 쌓인 비탈길을 공양미 이고 오르던 일화를 기억한다. 그러기에 화자를 맞아주는 암자 불빛은 어머니가 생전에 화자를 맞아들이듯 반갑다.

시골의 불빛은 깜깜할수록 더 빛난다. 더 빛날수록 따뜻해진 이 불빛은 생전 부엉이가 울던 밤 장독대 뒤에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의 안녕을 간절히 빌었던 어머니로 연상되고, 그런 어머니의 기도로 화자는 고희가 넘어서도 무탈하게 지내며 시를 잘 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회재를 액자 프레임으로 설정 사건의 시작과 종말을 구성하고 있다. 회재는 서사가 시작되는 곳이자 끝나는 곳이다. 화자는 어머니 제사 지내러 회재라는 고개를 넘어 갔다가 다시 암자를 나와 회재를 넘어 고향을 떠난다. 불빛은 화자가 고향에 들어가고 나오면서 반겨주는 어머니의 혼령과 같다. 어머니는 지수화풍으로 돌아가셨어도 불빛이 되어 화자의 앞길을 응원하며 밝혀준다.

암자가 있는 철승산은 시 <청우정晴雨亭에서>도 언급된다. 시인은 청우정에 누워 빗소리나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비구름에 젖은 철승산에서 휘파람 울거든/ 삶에 찌든짐을 벗으라는 당부인줄 알라고 한다. 시인의 노련한 필력이 가져다주는 전략적 구성 틀을 보여주는 시가 <남가섭암 불빛>이라면, 고도화된 언술의 기교를 통한 서정의 백미를 보여주는 시는 <달빛 기도>.

 

마곡사 부처님께

백팔배 하고 돌아온 저녁

부처님 입가의 미소처럼

초승달 따라왔네

그대 빗장 지른 가슴에

달빛 한 가닥 스치거든

마음의 문 활짝 열어달라는

달빛 기도인줄 아소서.

- <달빛 기도> 전문

 

이 시는 표현과 내용이 쉬우면서도 상당한 표현력이 없으면 써내기 불가능한 시다. 화자는 고향 근처 마곡사에 가서 백팔 배를 하고 돌아와 하늘을 보니 초승달이 따라와 부처님 미소처럼 웃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전반부가 묘사 중심의 서경이라면, 후반부는 시인의 서정적 충동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대는 불특정 다수를 가리킨다. 개인의 백팔 배 경험을 불특정 다수를 향한 기도로 확장하고 있다. 거기다 달빛과 부처님 미소로 문장을 아름답게 장엄한다.

마곡사는 시 <청우정晴雨亭에서><내 고향 가교리>에서도 언급된다. 청우정은 마곡사에서 띄워 보낸/ 염불소리가/ 사람들 마음 밭에 풀꽃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보는 곳이며, 고향인 가교리는 마곡사에서 떠내려 온/ 염불소리가/ 마음마다 법당 하나씩 지어주는 곳이다.

선생은 시 <고사古寺에서> “사랑은 저 대웅전처럼/ 목탁소리 쌓여서/ 바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사랑의 문제를 통찰한다. 사랑은 법당의 향내처럼 묻어나는 것이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익숙해지고 깊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선생의 시에는 아직도/ 백제 말로”(<백마강 물새 울음>) 우는 백마강 물새와 고란사 종소리가 있으며, 시들했던 자신의 삶이 연꽃처럼 환하게/ 들을 수 있”(<대청호>)는 대청호가 있다.

<은적암 가는 길>에서 선생은 부처님 눈빛에선/ 산수리치 냄새가 풍겨야 제 맛이지라는 후각을 발견하고, 초승달에서 부처님의 상큼한 미소를 발견한다. <벌레의 뜰>에서 선생은 부처님 눈으로 보면 나도 한 마리 나방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살생을 내려놓으며 벌레하고 함께 사는자신의 서재가 수미산이라고 한다.

이렇듯 엄기창 선생은 시 문장에 남가섭암이나 은적암 등 사찰 이름, 산사와 독경, 목탁과 번뇌, 염불과 해우소, 고해와 속세, 부처님과 백팔 배, 고사와 대웅전 단청, 풍경소리와 법당, 연화문과 종소리, 초파일과 연꽃 등 불교 어휘를 제재로 활용해 자신의 감성과 의식을 투영하고 있다.

 

5.

 

엄기창 선생의 시들을 읽으면 마음이 밝고 맑고 아름답고 따뜻해진다. 세상을 자상하고 따뜻하게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을 준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잃어버린 세상을 걱정하는 선비의 풍모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더하여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 체화된 불교적 상상력을 통해 삶의 근원과 인생을 조망하는 힘을 갖게 한다.

특히 필자는 선생의 시를 읽어가면서 고희를 넘겼는데/ 명리를 다퉈 무엇하리”(<첫눈 오는 날>)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단풍>)노을에 물들면 노을이 되고/ 가을에 물들면/ 가을이 된다”(<내려가는 길>)세상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내 스스로도 더없이 행복해지는 일이다”(<행복론>)는 문장을 만나면서 깨달은 바가 크다.

이 시집에 묶인 밝고 맑고 깨달음의 향기가 생동하는 따뜻한 시편들은 모닥불처럼 활활 타올라 이 세상을 따뜻하게 데워줄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선생의 시를 만나 시 한 편 읽고 좋은 일 하나 생기고, 두 편 읽고는 더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선생의 시처럼 마음속에 아름다운 꽃을 많이 피워 사람의 향기가 온 세상을 가득 채우길 바란다. #

 

posted by 청라

엄기창 「초도에 내리는 별빛」

엄기창론 2023. 6. 24. 11:22

엄기창 초도에 내리는 별빛

 

 

꽃들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애써서 예쁘게 꾸미려 하지 않는다

대충대충 피어도 꽃은 꽃인가

다 떠나고 남은 집 혼자 지키는

앵두나무 야윈 가지에 봄이 환하다

육지가 있는 수평선 쪽으로는

보이지 않는 붉은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

칠이 벗겨진 지붕과 빈 마당 가

우두커니 서 있는 돌 절구통 적막 위에

십자가가 내려진 교회 터에 떠도는

찬송가와

무너지다 만 벽마다 지워져가는

아이들의 낙서도

곧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지

소멸의 순서를 기다리며 서 있는

인간의 발자국 위로 별이 내린다

초도에 내리는 별빛은 갓 씻어낸 호롱불 같다

앵두꽃에 별빛이 내려 별이 꽃인지

꽃이 별인지 알 수 없는 밤

낚시로 잡은 붉바리 회에 술 한 잔 걸치고 보니

원래 혼자였던 섬의 옷깃 한 자락

내가 지팡이 삼아 잡고 있구나  

   

-엄기창 초도에 내리는 별빛전문  

 

 

 

        

  E.H.Carr에 따르면 역사란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와의 대화라고 하여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현재의 가치에 비추어 의미 있는 역사가 진정한 역사라 하였다 한 개인의 기억 역시 자신을 둘러 싼 주변의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통해 생겨난 자신의 심리에서 야기된 기록이 현재의 상황에서 재현된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우리는 자신이 알든 모르든 간에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상황이나 자신이 선택적으로 기억한 과거의 일들에 더 강한 영향을 받으며 현재의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사실들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과거의 자신에게 주어지고 해결된 일들과 특별한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보다 잘 기억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강한 자긍심을 갖기도 하며 자신이 속했던 집단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기도 한다. 이 경우, 낙관적인 요인과 결합되기도 하는데, 낙관이 늘 좋은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냉철한 현실이 필요하며 문화의 맥락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Martin Seligman) 

  시의 화자는 초도에 들면서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자연 환경을 바라보며 이들의 과거로 돌아가는 생각을 열어 놓았다. 현실적으로 실재하는 공간에서 나아가 생각 속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다 떠나고 남은 집에서 화자는 장소가 가져다주는 공허함을 만나게 된다. 주인이 없어 손보지 않은 칠이 벗겨진 지붕과 빈 마당교회를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텅빈 십자가가 내려진 교회 터에 떠도는 찬송가에서는 이미 장소의 구실을 할 수 없고 흔적만 남은 한 때 교회였던 곳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초도는 무너지다 만 벽마다 지워져가는 아이들의 낙서에서 이미 이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 버리고 홀로 늙어 가는 장소가 되어버린 점을 읽을 수 있다. 한때 초도는 사람들이 꽤 살았지만 삶의 여건이 여의치 않아 섬 초도의 주민들이 모두 떠난 섬이다 이렇게 늙어버린 섬 가운데 서서 현재의 자신은 그 늙은 땅의 지팡이로 서 있다고 한다. 비록 장소에 대한 긍정화와 자긍심과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한 때 소중하던 모든 것들도 결국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상황에 대한 냉철함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의 집 해월당

posted by 청라

엄기창 시의 특징

엄기창론 2023. 4. 14. 21:44

엄기창 시의 특징

 

 시는 아무래도 응축이 그 바탕이다. 산문이 진술을 통하여 확산을 하는 장거리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시는 압축을 통하여 사물의 핵심을 전광석화로 드러내려는 최단거리의 장르라 이를 만하다. 산문에서는 할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비교적 마음 턱 놓고 차근차근 이야기할 수 있으나 시는 그럴 수가 없다. 직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시는 상황에의 설명이 아니라 존재에의 부가이다. 윌리엄 G 모울튼이 시를 일러 산문의 토의문학과 대비하여 창조문학이라고 한 것은 소박한 대로 정곡을 찌른 견해이다.

 엄기창의 시는 이처럼 응축과 절제를 바탕으로 언어의 경제 원리를 모범적으로 보여 준다. 어느 시, 어느 구절 하나 그냥 허술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길고 긴 이야기와 감추어진 여백의 의미를 가득 넘치게 거느리고 있다. 빠르게 스쳐 읽는 사람에게 그의 시는 문을 열지 않는다. 적어도 작자가 힘쓴 몇 십 분의 일 만큼이라도 차분한 인내심을 가지고 음미하듯 읽는다면 그의 시가 가진 묘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엄기창의 시가 경제적이고 단단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드라이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의 시는 봄비처럼 촉촉이 스미는 그 무엇이 있다. 그 자력(磁力)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바탕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시적 형상화의 성공이라고 생각된다. 대체로 문학은 말하기(telling)보다 보여주기(showing)를 통해 구체성으로 나타내야 하며 그것은 시에서 극치를 이룬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형상화 또는 육화(incarnation)라 부른다. 관념의 노출이 시가 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관념이 용해된 시적 육체를 얻을 때 공감대가 넓고도 깊어진다. 육화와 더불어 또 하나 지적할 일은 시의 서정성이다. 아무래도 시는 감성의 문학이며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부분이다. 엄기창의 시는 잔잔한 서정을 예외 없이 배음처럼 깔도 있다. 거기에다가 시의 호흡이 잘 정돈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또 하나는 위와 같은 기본적인 바탕위에 그가 가진 시정신의 취향이 보여주는 친화력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로는, 자연 친화의 경향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애정을 보내는 태도는 고금 시인의 일반적인 경향이며, 특히 동양시의 전통이라서 엄기창의 자연 친화는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것은 단순한 자연예찬이 아니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계문명의 세계에 대한 거부와 농촌(고향) 붕괴에 대한 연민의 정을 포괄한다. 둘째로는, 미세한 것에 대한 그의 애정이다. 벌레 한 마리, 새 한 마리, 들꽃 한 송이에 대해서도 그는 애정을 보낸다. 주로 그의 애정은 자연에 향해 있지만 어쨌든 그것들은 거대하고 웅장한 것이 아니라 대체로 작고 힘없는 것들이다. 셋째로는, 삶의 현상을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쪽의 보이지 않는 데를 투시하여 의미를 드러내려는 예지가 그의 시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좋은 시냐 아니냐의 갈림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때, 엄기창의 시가 시로서의 높은 품격을 지니며 주목을 받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posted by 청라

<엄기창 시집 해설>

 

싱싱한 바다로의 항해를 꿈꾸는 연가

 

                         양병호(시인, 전북대 국문과 교수)

 

 

 

 지구는 하나다. 이 명제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단 하나인 지구가 파괴되거나 훼손당해 멸망한다면 다른 대책이 있는가? 소극적 대책으로는 지구 환경을 보존하며 오래도록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적극적 대책으로는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가진 다른 혹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아니면 지구와 동일한 조건의 혹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하나인 지구를 둘 이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대책은 현재의 지구를 인류의 생존에 적절한 환경으로 유지 보존하는 것이다.

 인류 생존의 가장 궁극적인 토대는 지구이다. 지구의 위기는 사실 다양한 상상력의 소산으로 제기된 바 있다. 가령 지구촌의 다양한 재난을 소재로 다룬 재난영화를 들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기상이변을 다룬 설국열차, 지진해일을 소재로 한 해운대, 땅 꺼짐을 다룬 터널, 독가스의 폐해를 조명한 엑시트에서 지구의 위기를 제시하고 있다. 해외의 경우, 지구 온난화를 다룬 투모로우, 대지진과 화산폭발로 인한 해일의 충격을 소재로 한 2012, 기후 변화의 재해를 다룬 페펙트 스톰, 지오스톰등이다. 이 영화들은 모두 현실에서 일어난 혹은 미래에 일어날 지구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지구의 멸망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진 이유는 금세기에 대두된 기후 변화와 관련이 있다. 실제로 우리는 현실에서 다양한 기후 변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기후 변화의 주된 원인으로는 탄소 배출이 적시된다. 과학 문명의 발달과 산업화로 인한 석유와 석탄의 과다 사용이 탄소 배출을 주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기상 이변이 야기되고 있다. 기후 변화는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인류는 그 대책으로 탄소 배출량을 감소하기로 기후협약을 공표하였다.

 그럼에도 기후 변화로 인한 지구의 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사물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이 명제에 따르면 지구라는 혹성도 언젠가는 종말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 종말에 대한 대책은 우선 당장은 기후 변화로 인한 재해를 방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생태주의와 자연주의가 현실에 맞게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다. 자연 환경 보호를 위하여 인류 모두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실생활에서의 실천력을 고양해야 할 것이다. 그 일상에서의 구체적 방안은 상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제시된 바 있다.

 지구의 환경 중에서 바다의 오염과 훼손 문제 또한 심각하다. 태평양에 쓰레기로 만들어진 섬이 생겨났다는 뉴스는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다. 우리나라 해변에서 목도되는 바다 오염 현상이 일상적인 현실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바다에 버려지는 쓰레기 혹은 유류 누출로 인한 환경 훼손의 뉴스도 반복되고 있다. 코에 스티로폼 빨대가 꽂힌 채 유영하는 바다거북이의 영상은 참말로 충격적이다. 또한 바닷물고기가 미세플라스틱을 플랑크톤으로 착각해 먹이 활동을 하여 생선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는 상황이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바다의 시간󰡕에서 바다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이다고 말한다. 그는 바다를 전 인류의 공공재산으로 오랫동안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폐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동식물의 어종 감소, 기온 상승으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 부족한 식수를 대체하기 위한 바닷물을 활용한 담수 개발, 탄소 배출량 감소를 위한 해양 광물 자원의 무분별한 개발 제한 등 인류의 대량절멸을 막기 위한 국제 사회의 협력이 긴급히 필요함을 강조한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약 70% 분포를 차지하고 있다. 인류는 이 바다를 통해 어업, 수산업, 해운업, 무역, 교통 등의 혜택을 입어 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래로부터 동서남해를 통해 풍윤한 삶을 구가해 왔다. 그런데 산업과 교통의 발달로 인하여 바다가 지닌 순수 원형성이 손상 파괴되는 형국에 이르렀다. 요즘 바다는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각종 폐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현장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문명과 과학의 발달로 인한 바다의 오염과 훼손의 문제는 지구의 위기를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테마가 되었다.

 

 엄기창 시인의 이번 시집 󰡔바다와 함께 춤을󰡕은 오로지 바다라는 시적 대상만을 집중적으로 끈질기게 형상화 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의 대상만을 집요하게 성찰하고 내면화 하는 작업은 매우 보기 드문 기획이다. 특히 시집을 4부로 편집한 의도 역시 매우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부는 바다의 현실 즉 오염과 훼손된 상황을 사실적 톤으로 제시하고 있다. 2부는 파괴된 바다 현실에 대한 대응 즉 보전과 개선 방안을 주창하고 있다. 3부는 개선된 바다에 대한 긍정적 전망과 희망찬 바다 생활을 노래하고 있다. 4부는 기행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바다나 항구 등에 대한 기행의 기억 혹은 추억을 서정적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1-3부는 바다의 환경오염과 훼손 현황, 바다의 생태 보전에 대한 현실적 대책, 그리고 환경 생태의 회복에 대한 미래의 긍정적 비전을 마치 르포 형식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바다 생태 보전에 대한 인과관계와 목적의식이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바다의 환경 문제에 대한 체험적 보고를 서정 양식을 빌어 조망하고 있는 것이다. 4부는 바다에 대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 서정을 극대화시켜 노래하고 있다. 서정시의 관점에서 4부에 편재된 작품들의 완결성이 상대적으로 가장 두드러지고 있다. 그리하여 4부에는 서정적 감동을 담보하는 가편들이 집중되어 있다.

 엄기창 시인은 시집의 1부에 바다의 아픔으로 소제목을 붙일 만큼 바다가 당면한 오염과 훼손의 문제를 다양하게 조망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적조, 해양쓰레기, 기름유출로 인한 해양오염, 온실가스, 방사능 유출, 공장의 폐수 등을 시적 소재로 차용한다. 그는 서정 양식을 통해 바다의 현실을 안타까운 어조로 고발하는 자세를 보인다. 그가 직접 목격하거나 체험한 바다의 훼손 상황을 보고하는 어법은 구체성, 직접성, 현장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얻는다. 나아가 바다 환경 생태의 중요성을 실감나게 하는 목적성도 아울러 성취한다.

 

바다는 비가 와도 젖지 않는다.

세상의 눈물 나는 일들은

모두 바다에 모여 있다.

작년에 아프리카에서 반란군에 살해당한

어미의 슬픔과

플라스틱 병을 삼키고 허연 배를 드러낸

고래의 눈물이

소용돌이로 울고 있다.

더 이상 버리지 마라.

아침 해를 띄워 올리는

저 바다의 싱싱한 웃음 뒤에

한 그루씩 죽어가는

산호의 비명이 포말泡沫로 부서지고 있느니.

바다는 스스로 늘 제 몸을 닦고 있지만

이미 흠뻑 젖어

더 이상 젖을 곳이 없다.

세상이 버리는 아픔

모두 꽃으로 피울 수는 없다.

슬픈 바다전문

 

 이 시는 제목 슬픈 바다에서부터 바다의 부정적 현실에 대해 느끼는 슬픔의 정서가 표출되고 있다. 예컨대 화자는 바다가 처한 환경 생태의 위기 상황에 대해 슬픔의 정서로 반응하고 있다. 특히 객체 바다와 주체인 화자의 현실 인식이 슬픔의 정서로 합일되고 있는 점이 그 강도를 더욱 고양시키고 있다. 먼저 바다는 비가 와도 젖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은 바다의 극한 상황을 드러내는 역설이다. 여기서 젖음은 이미 충분히 젖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젖을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이다. 뒤에 나오는 시적 맥락을 고려하면 젖음은 정화의 의미를 함축한다.

 이어서 바다의 무한 포용력에 대한 사례들이 중첩되어 제시된다. 바다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슬픈 일들을 포괄하는 웅숭깊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가령 아프리카 각 나라의 정치적 불안정 때문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내란에서 가족을 잃은 어미의 슬픔을 바다는 포용한다. 또한 바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플라스틱 병을 흡입하여 죽은 고래의 눈물역시 바다는 끌어 안는다. 이처럼 바다는 지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비극적 상황을 보며 소용돌이치는 슬픔을 감내하고 있다.

 에 화자는 더 이상 버리지 마라고 경고한다. 물론 생략된 목적어는 각종 폐기물, 오물, 환경폐수 등으로 추론 가능하다. 인간이 버린 각종 생활 오염물질로 인하여 훼손된 산호의 비명이 들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바다의 싱싱한 웃음을 소멸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바다는 근원적으로 지구를 정화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포용한계를 벗어나 더 이상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해 있다. 바다는 이제 더 이상 세상이 버리는 아픔/ 모두 꽃으로 피울 수는 없는 극한 상황에 내몰려 있다. 이 시는 바다 환경의 오염과 훼손으로 인하여 자정능력이 발휘될 수 없는 비극적 현실을 경고하고 있다.

 

방조제들이 쇠사슬처럼

바다의 자유를 결박結縛하고 있다.

폐경기의 달거리 빛으로

바다는 노을을 베고 잠들어 있다.

방조제 밖의 물들은 까치발 서서

안쪽의 물들을 보며

격려의 박수를 치고 있지만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소망들이

조금씩 수척해지며

미라가 된 바다.

숨죽은 물결 소리 깨어진 칼날이 되어

새만금의 일몰日沒을 찢고 있었다.

미라가 된 바다전문

 

 이 시는 새만금방조제 구축으로 인해 자연스런 해류의 유통이 차단됨으로써 야기된 바다 생태의 파괴 문제를 형상화 하고 있다. 제목 미라가 된 바다가 함축하고 있는 바와 같이 방조제로 인해 바다는 생명성이 고갈된 상황으로 인지된다. 방조제는 쇠사슬로 은유되어 바다의 자유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기능을 작동한다. 이러한 사유의 이면에는 자연주의와 생태주의의 관념이 바탕하고 있다.

 나아가 바다는 생식능력을 상실한 폐경기의 여성으로 은유된다. 바다의 현실적 시간 역시 노을이 진 이후 밤이다. 바다는 잠든 상태로써 활력과 생기를 상실한 무기력한 상황에 처해 있다. 방조제 밖의 자유로운 해수들은 방조제 안에 갇힌 해수를 향해 자유로운 유통을 유도하지만 실패에 그치고 만다. 자유로운 해수 유통을 꿈꾸는 환경 생태의 소망”/본질은 결국 미라에 직면한다. 이 시는 방조제 건설로 야기된 바다의 자유로운 생태 환경의 훼손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 온몸을 뒤틀며 괴로워하는 바다의 비명이 무좀균처럼 발바닥 피부 사이로 스며든다. 멸치도 아파하고, 정어리도 아파하고, 상어도 고래도 아파한다. 바다는 작은 것도 큰 것도 온통 아파하는 것들뿐이다.

 

 아시아의 강들은 오줌발도 걸레다. 쏟아내는 목청마다 모두 욕설뿐이다. 그들은 왜 공장마다 문을 강 쪽으로 열어놓았을까. 문마다 왜 그렇게 쌩욕들을 쏟아 부을까. 강들은 죽고, 죽은 강을 마시는 바다는 배가 아프다. 펄펄 뛰다 죽을 만큼 배가 아프다.

 

 태평양 아열대 환류는 쓰레기로 섬을 만든다. 일조 팔천억 개의 플라스틱이 먹이처럼 떠돌고 있다. 배고픈 물고기들 덥석 먹어버리면 소화도 되지 않고, 뱉어낼 수도 없고. 바다엔 병원이 없다. 절대로 통증을 가라앉힐 수가 없다.

 

 팔라우의 산호는 지금도 죽고 있다. 온난화溫暖化로 육지는 물로 덮여가고, 빙산은 녹아서 북극곰은 갈 곳이 없다. 폐수로, 쓰레기로, 온난화로 펄펄 열이 끓는 바다

 

 바다가 아프면 이제 사람도 아프다.

연민憐愍전문

 

 이 시는 환경의 오염과 훼손으로 인해 질병에 걸린 바다의 환부를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제시한다. 이 시의 상상력은 바다를 질병에 걸린 유기체로 은유하고 있다. 화자는 질환에 시달리는 바다를 연민의 정서로 조망한다. 먼저 바다는 무좀의 질병에 감염된다. 그리하여 바다의 가족인 멸치, 정어리, 상어, 고래도 통증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3연에서는 바다가 질환에 걸린 원인이 제시된다. 바다의 질병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바다로 유입되는 강의 오염 때문이다. 산업화의 발달로 인해 각종 공장에서 배출하는 폐수가 강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강으로 유입되는 폐수와 환경오염 물질은 걸레, 욕설, 쌩욕등으로 환치되고 있다. 그리하여 바다는 펄펄 뛰다 죽을 만큼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4연은 태평양에 떠도는 쓰레기 섬을 주목한다. 인류가 쓰고 버린 플라스틱은 해류를 따라 떠다니다가 북태평양 환류 해역에 타원형 꼴의 거대한 섬을 만든다. 이 쓰레기 섬은 플라스틱 제품을 일상에서 쓰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이 완전 분해되는 데에는 수백 년이 걸린다. 플라스틱은 바다에 떠다니면서 많은 바다 생물의 몸에 들어가고 결국은 생선을 통해 우리가 섭취하게 된다. 바다 위를 떠도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바다를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식생활을 통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5연은 기후 변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 현상을 적시하고 있다. 과도한 탄소 배출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올라서 북극과 남극의 빙산이 녹는다. 이로 인해 바다의 수면이 상승할 뿐 아니라 각종 해일과 태풍이 발생하여 재난 상황을 초래한다. 구체적으로 남태평양의 산호와 북극의 북극곰은 생존의 위기를 맞는다. 결국 지구는 폐수, 쓰레기, 온난화로 인해 질병에 걸린 상태에 직면한다. 이는 곧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원인이 된다. 이 시는 바다의 질환을 연민의 시선으로 응시하는 보고서에 다름 아니다.

 

 시집 1부는 바다가 처한 환경 생태 위기의 상황을 구체적인 현장의 사례를 들어 자세하게 진단하고 있다. 이어서 2부는 질환에 걸린 바다를 치료할 방안과 대책을 형상화 하고 있다. 예컨대 1부가 진찰이라면 2부는 처방과 치료 행위로 비유할 수 있다. 즉 환경 생태 위기에 빠진 바다를 치료하여 긍정적 미래를 지향하려는 의지적 면모를 드러낸다. 시인은 그 구체적 실천 행위로 바다의 환경 생태 위기를 시 쓰기 작업을 통해 경고하거나, 바다를 치유하는 구체적 사례를 시화하거나, 바다의 본질적 기능과 인류사적 가치를 제고한다.

 

고희古稀 넘어 바다의 방언方言도 술술 들리니

사는 일에 걱정이 더 많아졌다.

바다의 큰 병 앓는 신음에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나 혼자 쩔쩔매며 약 한 첩 못쓰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래 바다를 사랑하는 게 약방문藥方文이다.

로 외쳐서 세상을 바꿔보자 하고

처방處方을 내렸다.

 

바다는 어린애다.

다정하게 손잡아 주면 와락 안겨오다가도

조금만 섭섭해지면 토라져서 몇 날 며칠이고

태풍을 몰고 온다.

약이 쓰면 토해버리고 정을 떼면 아파한다.

가슴을 한없이 따뜻하게 데워놓자.

통통 튀지 못하도록 꼬옥 안아주자.

망팔望八의 길목에서 시처방전處方篆을 쓴다.

처방전處方篆을 쓰다전문

 

이 시는 이 시집의 기획 의도를 총론적 차원에서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시인은 바다가 처한 생태 환경의 위기를 시 쓰기 작업을 통해 공론화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바다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은 우선 처방전을 쓰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 쓰기는 처방전을 쓰는 것과 동일시된다. 처방전이 제시하는 구체적 치료 방안은 바다 사랑이라는 원론적, 본질적 지향을 보인다.

1연은 바다의 환경 생태 위기를 사랑을 통해 벗어나 보려는 발상의 과정을 소개한다. 바다 사랑의 구체적 실천의 방안은 시 쓰기 작업이다. 화자는 작시 활동을 통해 바다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화자는 노년에 이르러 사는 일”/삶에 대해 고민과 걱정이 많아졌음을 고백한다. 그 고민 중 하나가 바다의 생태 환경의 훼손 문제이다. 그는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직면한 바다의 위기를 보며 안절부절” “쩔쩔매며방황하던 화자는 바다를 사랑하자는 목적의 시 쓰기 작업을 착안한다.

2연은 바다 사랑의 과정을 비유적으로 표상한다. 예컨대 바다는 어린애다는 은유를 통해 바다의 순수성을 표출하고, 나아가 무한한 애정을 주어야 할 대상임을 강조한다. 바다의 속성을 어린애의 성품으로 구체화 하는 것이다. 바다는 인류의 무한 애정을 받으면 순수하고 착한 성정으로 보답하지만, 애정을 주지 않으면 토라져서 태풍을 몰고 오거나”, “토해버리고”, “아파한다.” 하므로 바다가 통통 튀지 못하도록”, 즉 바다가 재난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아낌없이 애정을 부여하자고 권유한다. 이러한 화자의 주장은 곧 바다의 환경 생태 위기를 벗어나는 시 쓰기 처방전이다.

 

갯바위들이 기름을 뒤집어쓴 채

박제剝製처럼 정지해 있다.

끓여낸 해물 탕 속의 식재료들처럼

게도 조개도 갈매기마저

검은 타르의 국물 속에 건더기로 떠있다.

방제복을 입고 장갑을 끼고 마스크에

장화를 신은 채

사람들은 졸도해있는 바다 곁으로 다가섰다.

끊어진 빨랫줄처럼 해안선이

바람에 출렁거릴 때

사람들은 바다의 절망을 퍼내 자루에 담고

한숨의 찌꺼기를 긁어내었다.

수평선이 푸르게 일어설 때까지

기도祈禱의 걸레로

바다를 닦고 또 닦아내었다.

먼 바다의 바람도 잊지 않고 달려와

새 숨을 나눠줬다.

말기 암 노인처럼 누워있던 바다가

저녁놀에 기대어

봄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바다를 닦아내다전문

 

이 시는 기름 유출로 인해 오염된 바다 환경을 원상회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요즘 유조선의 사고로 인한 기름 유출 환경오염 사건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따금 지구의 여러 바다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일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충청남도 태안 앞바다에서 일어난 유조선의 기름 유출 사고가 떠오른다. 이 기름 유출 사고는 서남해안의 어장, 양식장, 해수욕장을 오염시켜 큰 피해를 야기했다. 당시 전국에서 수백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찾아와 기름 제거 작업을 도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시는 태안 앞바다의 기름 제거 작업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유조선에서 유출된 기름으로 뒤덮인 서해안 바다의 광경이 사실적으로 제시된다. “갯바위는 생명성이 소멸된 박제처럼 활력을 잃고 누워 있다. 검은 기름으로 범벅된 바다에는 , 조개, 갈매기가 죽어 부유하고 있다. 비극적인 환경오염의 현장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기름 제거 작업을 위해 완전 무장을 한 사람들은 졸도해 있는 바다를 회생시키기 위해 분투노력한다. 바다는 끊어진 빨랫줄처럼 불구의 상황에 놓여 있다.

작업자들은 바다의 절망한숨의 찌꺼기를 제거해내고 있다. 바다를 되살리기 위해 사람들은 기도의 걸레로 끊임없이 기름을 닦아낸다. 이와 같은 인간의 노력에 공감한 먼 바다의 바람도 자연의 바다를 원상회복시키기 위해 동참한다. 처절한 사투 끝에 말기 암 노인처럼 누워있던 바다는 마침내 봄꽃으로 소생하게 된다. 이 시는 훼손된 바다를 싱싱한 원래의 바다로 복구하려는 희망의 작업을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이다.

 

바다 환경 생태의 오염과 훼손 현장을 안타까운 태도로 제시하고, 바다의 긍정적 미래를 위해 환경을 보전하는 노력을 주장한 다음, 3부에서는 바다와 더불어 사는 희망찬 삶의 풍경을 긍정적 시선으로 조망한다. 3부는 바다로 떠나는 항해의 설렘과 건강한 삶의 희망이 편재되어 있다. 그리하여 바다는 미래로 나아갈 긍정적 삶의 공간임과 동시에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상적 공간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일출日出을 예인曳引하러 떠났던 배들이

해당화 꽃밭처럼

눈부신 아침을 피워놓으면

부산항은

새벽 닭울음소리로 피곤을 털고 일어나

오륙도 너머 수평선으로 출항出港의 깃발을 단다.

닻을 올리고 뱃고동소리 항구를 울리면

이제 나는 바다의 사나이

동백섬에 봄이 왔다고

동백꽃 향기 나를 부르러 와도

손을 흔들어야 한다.

에메랄드빛 꿈을 잡으러 떠나야 한다.

바다를 품는 사람이 세계를 이끄는

신 해양시대

해양 르네상스를 이 손으로 꽃피우겠다.

항구야 잡지 마라.

파고波高 험한 길이라고 멈출 수 있나.

불끈 일어선 젊음이 시들기 전에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한 바퀴 돌아

바다의 주인이 되어 돌아오겠다.

출항出港의 아침전문

 

이 시는 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수부의 시선으로 삶의 강인한 의지와 희망을 역동적인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궁극적으로 바다에 대한 진취적인 기상을 발휘하여 해양 르네상스를 꿈꾸는 태도를 보인다. 자연의 이법인 일출조차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예인하여 아침을 일으킨다. 자연의 시간인 아침해당화 꽃밭이라는 긍정의 밝은 공간으로 은유된다. 또한 밝아오는 아침의 부산항은 바다로 출항하는 배들이 부산하게 삶의 깃발을 올리고 있다. 배에 승선한 화자는 지상의 동백꽃의 유혹도 물리치고 출항을 감행한다.

바다로 나아가는 이유는 에메랄드빛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 꿈은 신 해양시대를 구가하는 것이다. 화자는 해양 르네상스를 성취하기 위한 굳은 의지를 지니고 있다. 비록 해양 강국을 실현하는 도정에 파고 험한 길이 장애가 될지라도 극복하겠다는 다짐도 피력한다. “젊음이 사라지기 전에 유럽, 아프리카의 원정을 충실히 수행하고 바다의 주인이 되겠다는 진취적인 의지를 표명한다. 이 시는 바다를 긍정적인 삶의 장소이자 미래의 희망을 실현할 공간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바다가 그리울 땐

조개 집을 짓고 살리라.

 

내 방 안엔

파돗소리를 살게 하고

 

지붕은

갈매기 노래로 덮어

 

하루 종일 마음의 돌담 안에서

바다가 뛰어놀게 하리라.

 

텃밭에는

갯메꽃 몇 포기 웃음 짓게 하고

 

황혼이 피어날 때쯤

당신이 오면

 

가장 아끼던 술병을 열어

바다의 노래를 안주로

씹어가면서

 

바다에 취해 살리라.

조개 집전문

 

이 시 역시 바다와 더불어 사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이상을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 제시된 바다의 풍경은 몽환적인 동시적 분위기를 환기한다. 바닷가에 조개 집을 짓고 안빈낙도하는 삶은 바다의 순수한 자연 속성을 존중하는 자세이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삶은 먼저 조개 집을 건축하는 시도로 드러난다. 조개의 삶의 공간은 바다이다. 따라서 조개 집은 바다의 환경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미이다. 달리 말하면 화자는 바다 자체를 매우 긍정적인 특성으로 인지한다.

화자는 조개 집을 짓고 사는 몽환적인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예컨대 그는 항상 파돗소리가 들리는 거주환경을 상상한다. 나아가 집의 외부 공간에 갈매기 노래가 들리는 친자연적 상황을 꿈꾼다. 화자는 온종일 순수한 바다와 더불어 평화롭고 안락하게 사는 자연의 삶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또한 울안 텃밭에 갯메꽃을 심어 자연과 동화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을 표출한다. 외롭고 맑은 자연의 삶을 이루다 이따금 친구가 찾아오면 더불어 바다의 순수성에 동화되리라는 희망도 지닌다. 이 시는 순수한 바다와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소박한 삶을 맑고 투명한 시심으로 읊조리고 있다.

 

4부에 편집된 작품들은 항해 중에 만나는 싱그러운 바다의 풍광, 아름다운 해변의 평화로운 정취, 해안도시에서의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기쁨, 바닷가 여행에서 느끼는 신선한 감흥, 기행지에서 만나는 그리움과 같은 인간의 근원적 순수서정 등을 유려하게 형상화 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긍정적 세계관과 낙관적 가치관에 힘입어 소소하고 순박한 삶에 대한 희열과 바람을 드러내고 있다. 어찌 보면 1부에서 보여준 오염되고 훼손된 바다의 부정적 현실이 거세되고, 희망찬 미래의 바다와 더불어 사는 꿈을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온 세상 한 바퀴 돌아

사나이 할 일 다 마치고 돌아와선

그래도 바다가 못 잊어 하면

조선소造船所가 환히 보이는 거제도 바닷가에

작은 집 짓고

바다랑 도란도란 얘기나 하며 살겠네.

 

심심하면 가끔 조선소造船所에 가서

큰 배 만드는 거나 보면서

그 배 커다란 몸을 이끌고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이나 보면서

낮은 돌담에 장미 대신 해당화를 올리고

바다랑 지난 세월 사랑 얘기나 하며 살겠네.

 

저녁에 인생처럼 황혼이 깔리는

바다에 취해

막걸리 몇 잔 마시고 바다를 살며시 안아주면

, 어린 곤충처럼

파르르 몸을 떠는 바다

내 몸 깊은 곳에 알을 낳는 바다.

 

먼 수평선에 운명처럼 달이 떠오르면

은빛 물결이 되리라

바다와 한몸이 되어 춤을 추리라.

아픔도 서러움도 달빛으로 씻어

온 바다 흥타령으로 푸르게 일어서게

플라멩코 춤보다 더 격정激情적인 춤을 추리라.

바다와 함께 춤을전문

 

이 시집의 표제시인 이 작품은 시집의 마지막 쪽에 실려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견고하고 치밀한 기획은 이 시집의 독창성이자 미덕이다. 바다 생태의 훼손 현실에서 시작한 다음, 개선과 보전의 의지를 다루고, 복구와 개선을 통해 원상회복된 바다의 기쁨을 노래한 뒤, 마지막 작품은 바다와 혼연일체가 된 기쁨과 희열을 구가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시인이 꿈꾸고 소망하는 이상적인 바다와의 삶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러한 기획은 주도면밀한 기승전결의 구조로 시집의 편집을 의도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 시의 제목 바다와 함께 춤을이 암시하는 바는 바다와 함께 춤추듯이 행복하고 초월적인 삶을 이루자는 바람이다. 춤은 현실의 슬픔이나 분노를 망각하는 기쁨의 육체행위이다. 달리 말하면 춤은 현실적 삶의 조건을 초월하여 새로운 삶을 성취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드러낸다. 화자는 바다와 더불어 춤추듯이 사는 인생을 통해 자유와 열락과 행복을 추구하리라 다짐하고 있다.

1연은 수부로 설정된 화자가 세계를 떠돌며 배 타는 일을 마친 뒤의 홀가분한 삶의 자세를 보인다. 그는 여전히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거제도 바닷가에 거주하며 바다와 더불어 사는 꿈을 드러낸다. 2연에서 화자는 항해를 하는 대신 조선소에서 배 건조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출항하는 배를 응시하며 한가로운 은퇴의 삶을 꿈꾼다. 모두 배 타는 일에서 은퇴한 이후 안분지족하는 평화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자세를 드러낸다.

3연은 은퇴 이후 늘그막에 바닷가에서 사는 소박하고 조촐한 삶의 정취를 표출한다. 그는 더 이상 물질적, 사회적 욕망 없이 바다의 자연 순리에 순응하며 단순하고 담백한 생활을 살리라 다짐한다. 4연 역시 바다와 혼연일체가 되어 사는 행복하고 완전무결한 삶을 꿈꾼다. 화자와 바다는 불가분리의 동일화 상태로 한몸이 된다. 화자는 현실의 아픔도 서러움도망각하게 하는 열락의 격정적인 춤을 추며 완벽하게 이상적인 바닷가의 삶을 희구한다. 이 시는 바다와 일체화된 삶을 추구하는 소망과 바람이 서정적으로 순수하게 표상된 작품이다.

 

바다의 탁본拓本을 뜨러

삼척엘 갔네.

그믐밤의 어둠을 짙게 칠했다가

초하루 아침의 맑은 햇살로 벗겨내면

파도의 싱싱한 근육들과 갈매기 소리,

삼척 사람들 다정한 미소가

해국海菊으로 피어있네.

태백을 넘어올 때 서둘러

손 흔들던 가을이

죽서루와 어깨동무로

빨갛게 타고 있는 곳

찍혀 나온 바다엔

좋아하면 모두 다 주는

삼척 사나이의 호탕한 웃음이

산호초 사이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네.

삼척에 가면전문

 

이 시는 바닷가 도시인 삼척에서 느낀 정회를 서정적으로 표상한 기행시이다. 여기에서도 바다와 더불어 사는 삶의 풍경을 매우 긍정적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 즉 바닷가 마을인 삼척은 행복하고 안락한 마을공간으로 표상되는 것이다. 아마도 도시에 사는 화자는 바다의 탁본을 뜨러 자유와 생기가 넘치는 항구도시를 방문한다. 그가 삼척에 가는 이유는 그믐밤의 어둠”/현실의 시련과 고통을 제거해주는 파도의 싱싱한 근육들과 갈매기 소리를 만나기 위해서일 것이다. 또한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삼척 사람들의 따스한 인정미를 맛보기 위한 것도 이유가 된다.

화자가 방문한 바닷가 마을 삼척은 해국이 피어 있으며,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드는 공간이다. 화자는 삼척이라는 공간을 매우 화평하고 이상적인 장소로 인지하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이유는 삼척이 순수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삶을 이루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삼척 사나이와 바다의 산호초는 서로 화응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화자는 순수 이상의 공간인 삼척에 가서 바다와 더불어 사는 삶에 동화되어 현실의 장애와 고통을 말끔하게 제거하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때 아름답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두 잔의 커피를 시켜놓고

홀로 커피를 마신다.

외로움이 커피 향으로 묻어난다.

창밖 먼 바다엔 어디로 가는지

배 한 척 멀어지고

유리창에

갈매기 소리들이 부딪혀 떨어진다.

이별을 말하던 날 빛나던 해당화는

다홍빛이 아직 다 바래지 않았는데

나는 왜 노을 지는 저녁이면 여기에 와서

쓸쓸히 바다에 취해 있는가.

주인 없는 찻잔을 바라보며

긴 한숨 내뱉으면

그리움은 사랑보다도 달콤하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전문

 

이 시는 인간의 근원적 정서인 그리움, 쓸쓸함, 외로움을 간명한 서정적 어조로 표상하고 있다. 화자가 머물고 있는 공간은 역시 바다가 보이는 찻집이다. 그는 미지의 바다를 조망하며 인간의 본질적 감성을 통해 존재론적 사색을 하고 있다. 화자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일견 바다로 보인다. 그러나 이 바다는 다시 매우 포괄적인 내포적 의미를 지닌다. 바다는 화자 혹은 독자가 그리워하는 모든 대상을 환치하는 열린 공간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바다는 마침내 인간의 본질적 정서인 쓸쓸함과 외로움을 포용하는 그리움의 대표적 공간으로 자리매김 된다.

 

엄기창 시인의 이번 시집 󰡔바다와 함께 춤을󰡕바다라는 하나의 시적 대상을 집요하고 끈질기게 탐구하여 형상화한 점이 매우 독특하다. 또한 시집의 구조를 기승전결(1-4)의 포괄적 구성으로 기획한 점 역시 탁월한 편집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획 의도는 시사적 차원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와 의의를 담보하고 있다. 이 시집은 바다의 환경 생태에 대한 고민과 우려를 교훈적이고 목적적 측면에서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이어서 오염되고 훼손된 바다를 원상회복하려는 의지와 실천의 광경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다음으로 바다와 더불어 사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서정적으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실생활 체험에서 우러난 바다와의 교감과 공감을 긍정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이 시집의 미덕은 공소한 정서와 허황한 관념을 철저히 배격하고, 바다에 대한 현실 체험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이 시집은 바다와 더불어 이루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진정성 있는 현장감을 획득한다. 또한 바다에 대한 구체적 현장 체험은 시인의 서정적 상상력을 통과한 아름답고 미려한 표현에 힘입어 수준 높은 시적 완성도를 성취한다. 시인은 결국 바다에 대한 다각도의 집중적인 시적 성찰을 통해 자연주의와 생태주의의 세계관을 표상하고 있다. 시인은 완전하고 이상적인 삶의 모델로 순수한 바다와 더불어 사는 안빈낙도의 소박하고 조촐한 생활을 제시한다. 시인은 바다의 순수성을 그리워하는 낭만주의자로서 유랑의 자유와 초월의 욕망과 도취의 행복을 꿈꾸고 있다.

 

 

 

posted by 청라

여성 편향적 삶의 풍경

엄기창론 2021. 5. 29. 08:53

이달의 문제작

 여성 편향적 삶의 풍경

                                                              한상훈문학평론가

 

 

 『시문학5월호엔, 세월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한 작품들이 많았다. 황홀했거나 쓰라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현재 시점에서 호출해서 그 순간의 이야기를 원고지에 옮겨 시상을 마무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밀한 시적 세공도 필요하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사건들이기 때이다.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 몇 작품을 감상해 보기로 한다. 우선 엄기창 시인의 작품부터 들어가 보자.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때 아름답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두 잔의 커피를 시켜놓고

홀로 커피를 마신다.

외로움이 커피 향으로 묻어난다.

창밖 먼 바다엔 어디로 가는지

배 한 척 멀어지고

유리창에

갈매기 소리들이 부딪혀 떨어진다.

                                -엄기창,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부분

 

 첫 구절에서 사랑에 대한 단정을 단호하게 내린다. 섣불리 규정할 수 없는 사랑 또는 삶의 오묘함에 대해 시인은 이미 도사처럼 터득한 듯하다. 겹겹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인생은 나의 욕망대로 되지 않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욕망의 종창역은 대부분 더 꼬이게 되고, 결국 인생은 추해지는 것이 아닌가. 나의 욕망을 비워내어 그냥 자연의 질서에 나를 맡겨보니, 그 자체로 아름답고 생의 여유가 생겨, 행복이 슬쩍 찾아온다. 그러기에 시인은 사랑하던 님이 가고 야속하기만 하지만 허전한 상태로 내 마음을 하염없이 풀어놓는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커피도 호사롭게 두 잔을 시켜 놓았다. 그만큼 상처의 시간은 지나갔다. 창밖을 보니, 저 멀리서, 넓고 푸른 바다에 점점 작아지고 있는 배 한 척이 보인다. 다시 외로워진다. 그러나 미소가 머문다. 완전한 사랑이 있겠는가. 사랑이 머무는 것도 잠시인 것을. 비록 외롭지만 달콤해지는 것이다. 애틋한 그리움은 서랍 속에 숨겨놓은 보석처럼 가끔씩 꺼내 보면서 언제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빛날 수 있기에.

 

                                                  『시문학20216월호(599)

posted by 청라

릴레이/나의 시 쓰기

 

시에 꽂히면 삶에 꽃이 핀다

 

                                                             엄기창

 

 

1. 내가 시를 쓰는 이유

 

시는 왜 쓰는가?

  예로부터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의문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세영 시인은 우주의 중심이 되고 싶어 시를 쓴다고 말했고, 정호승 시인은 스스로 존재를 사랑하기 위해서라 말했으며, 공자께서는 논어 위정편에서 시 삼백 편이면 思無邪라 했다. 그러나 나는 즐겁게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남들 다 꿈나라에서 노니는 깊은 새벽, 문득 잠결인가 발상 한 가닥 떠오르고 몽환적 상태로 서재에 가서 시상을 다듬고 살을 붙여 완성했을 때의 그 기쁨, 이런 순간은 전율과도 같아서 내 삶에 있어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지다. 시를 쓰는 게 즐겁고 시를 쓰는 게 행복해서 시를 쓴다.

  내가 시의 길로 빠져들게 된 원인은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숙제 때문인 것으로 기억된다.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밀짚 멍석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밤하늘엔 별이 빛나고 어머니 베 짜는 소리가 들려오는 밤이었다. 귀뚜라미 노래를 들으며 문득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엄마가 안방에서 베 짜는 소리

나는 멍석에 누워 별세계 꿈을 꾸고

동생들은 소록소록 잠자는 달밤

 

귀뚤 귀뚤 귀뚤 뀌뚤

귀뚜라미 풀숲에서 울어대는 밤

계수나무 밑에서 떡방아를 찧던

아기 토끼들은 떡 먹으러 가는 밤

달밤전문(초등학교 5학년 때)

 

  이 시가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어 상도 받고, 더구나 액자에 예쁜 그림과 함께 담겨져 복도 벽에 걸려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액자를 볼 때마다 우주의 중심이 된 것 같았고, 내 존재를 사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학교에 다니는 것이 즐거워졌다. 이때부터 틈만 나면 노트에 시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2. 날개를 달다

 

  대학에 가서 수요문학회에 가입했다. 수요일마다 모여 합평회를 하는데 선배들이 참으로 극성스러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잘 쓰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또 고등학교 때도 교내 문학회에 들어 활동을 했었는데, 작품을 내면 초보자 나무라듯 온통 난도질해서 걸레를 만들어놓았다. 나도 성질이 나서 그 선배 작품 낼 때 온갖 시론 책 뒤적이며 빨갛게 써가지고 가서 아주 혼을 내 놓았다. 그런데 합평회 끝나고 나선 늘 막걸리 집에 갔는데 그 날도 그 선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 엄기창 제법이던데.” 하는 것이었다. 그 후에 보니 평소 우러러보던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 문덕수, 서정주, 박목월 같은 시인의 작품도 합평회에 나오면 완전 박살이 나는 것이었다. 에그, 작품은 개똥같으면서 입들만 살아서.

그런데 그 투지를 깨워준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선배가 제법이라 했던 것도 선빵 맞고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갈기를 세울 줄도 안다는 칭찬이었을 것이다. 선배들의 독려? 속에 시작 능력이 일취월장 하여 71(2학년) ‘1회 학내 지상백일장대회에서 가작, 73(4학년) ‘한국시인협회주최 학생문예 우수상 등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 중 백미는 7322세의 나이에 시전문지 시문학이 창간 2주년의 기념사업으로 실시한 전국대학생들의 전국대학시집에서 아침 서곡序曲으로 당선의 영광을 안게 된 것이다. 그 작품을 보면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노래를 알았다.

비스듬히 을 베고 누운 들이

악보 속에서 걸어 나와

목젖을 두드렸다.

우는 새의 목 너머로 훔쳐 본

아직 어느 악보 속에도 살지 않는

의 침전,

아침의 곧은 줄기 성센 가지를 골라

새는 노래를 뿌린다.

번득이는 들로 구상構想 짓는

몇 올 가락이 햇살처럼 선명하게

숲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본다.

 

  유경환, 김남조 두 분의 심사위원께서 생경할 정도로 참신한 표현이라 칭찬해 주신 이 시를 통해 초회 추천을 받았고, 1975년 울진 해안에서 해안소대장을 하면서 쓴 아침바다라는 시로 추천완료를 하여 시의 길로 날아오르게 되었다.

 

3. 절제와 스밈의 시학

 

  내 첫 시집 서울의 천둥의 해설을 써주셨던 조재훈 선생님은 내 시의 특징을 절제와 스밈의 시학이라 하셨다. 극도의 응축을 통해 표현하고 견고하며 단단한 구조이면서도 드라이하지 않게 촉촉한 서정을 이미지를 통해 독자의 마음에 스며들게 해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의 경제 원리를 철저히 지키면서도 감성이 풍부한 시를 쓴다는 것이다.

  내 시엔 긴 것이 드물다. 그러나 내용마저 짧은 것은 아니다. 시는 짧지만 길고 긴 이야기와 감추어진 여백의 의미를 가득 넘치게 거느리고 있다. 빠르게 스쳐 읽는 사람에게 나의 시는 문을 열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힘쓴 몇 십 분의 일 만큼이라도 차분한 인내심을 가지고 음미하듯 읽는다면 내 시가 가진 묘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하늘 위엔

늘 천둥이 운다.

내려올 곳이 너무 많아서

내리지 않고

북악北岳에서 남산南山으로 흐르며

울기만 한다.

대밭에 참새처럼 숨어

지저귀는

사람들은 알리라

천둥이

누구의 머리 위에서

우르룽 우르룽 울고 있는지.

번갯불보다 고운 어둠 밑에서

사람들은 번갯불에 타면 재가 될

청홍靑紅의 꿈들을 만들고 있다.

서울의 천둥전문

 

  나의 시 가운데에는 특이할 정도로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조금도 격하지 않다. 차분한 가락과 상징을 통하여 할 말을 시로 드러내고 있다.

  서울 하늘에 천둥울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서울 하늘에만 어떻게 일 년 내내 비가 오고 천둥이 치겠는가. 그렇다고 과장도 허구도 아니다. 다른 의미를 뒤에 거느린 암시와 상징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사람들이 많은 만큼 온갖 악의 온상일 수 있다. 특히 고향의 시골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울은 반 자연이며 반 고향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천리(天理)에 따른 한울님의 응징인 천둥이 항상 울기 마련이다. 내려와 인간들에게 응징할 곳이 너무 많으나 그냥 스스로 울 뿐, 가시적인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으로서의 참새 떼같은 인간들은 조금도 뉘우침이 없다. 하늘의 말 ―― 번갯불에 타면 그냥 없어지게 될 갖가지 욕망의 꿈을 어둠 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있다. 어둠이 번갯불보다 곱다는 시적 진술은 역설이다.

 

4. 행복을 노래하는 긍정의 시

 

조남익 선생님은 내 3시집 춤바위해설에서 본래부터 시는 진선미(眞善美)였다. 인간이 이상으로 삼는 참다움 · 착함 · 아름다움인 것이다. 라고 말했다. 또한 셸리는 그의 시의 옹호에서 시는 지복지고(至福至高)의 마음의 지고지복(至高至福)의 순간의 기록이다라고 했다. ‘지극히 높고 지극히 행복한 기쁨의 경지에서 시는 탄생할 것이라는 말이다. 시는 정신적인 극치의 환희인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극도의 슬픔을 노래하고 더러는 그로 인해 독자들의 큰 호평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불행을 소재로 시를 써서 유명한 시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 시는 대부분 따뜻하다.

 

아파트 안 도로를 차로 달리다가

다리 다친 비둘기 가족을 만나면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선다.

 

경적을 울리면

아기 비둘기 놀랄까봐…….

 

산을 오르다가

허리 구부러져 누운 들국화를 보면

발을 멈추고 튼튼한 이웃에 기대어 준다.

가벼운 바람에도

몇 번이나 뒤돌아본다.

 

잠시만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내 따스한 마음 머물 자리가 얼마나 많은가.

 

조그마한 나의 온기가

다리가 되고, 날개가 되고

숨결이 되어줄 사람 얼마나 많은가.

 

단풍잎 붉은 기운이

핏줄을 타고 들어온다.

바람은 차도 가을은 따뜻하다.

따뜻한 가을전문

 

비둘기들이 놀랄까봐 차의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든가, 등산길에서 구부러진 들국화를 세워준다든가 등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노래하는 것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시의 자세이다.

 

5. 시에 꽂히면 삶에 꽃이 핀다

 

그러고 보면 내 주위엔 시를 통해 불행을 치유한 시인들이 많이 있다. 80세의 한 사람은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절망하다가 시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극도의 슬픔과 죽음에의 유혹마저 여보 어디 있어요라는 시집을 통해 털어낸 후 웃음을 되찾았다. 또 한 78세의 시인은 아내를 암으로 잃고 본인마저 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시를 알게 된 후 치유 받았다 한다. 두 사람 모두 시가 없으면 자기들은 죽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 시에는 강한 힐링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외로운 사람, 불행한 사람, 노년에 할 일 없는 사람들 모두 시에 꽂히면 삶에 꽃이 핀다.

 

 

시문학596(20213월호)

 

 

 

 

posted by 청라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탐구하는 시정신

엄기창론 2020. 9. 1. 07:45

이달의 문제작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탐구하는 시정신

 

                                                    김기덕문학평론가

 

 

  아인슈타인은 생애 마지막 20년 동안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단 하나의 이론, 우주의 모든 섭리를 설명할 수 있는 원리를 찾고자 연구에 매진하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아인슈타인이 연구하던 통일장이론은 지상의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인류는 끈이론이라는 새롭고 급진적인 이론을 통해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이론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충격에 빠질 것이다. 끈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끈으로 이루어져 있고, 현실은 실제와 공상과학이 뒤섞인 세계라는 것이다. 만물의 이론이라는 거창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끈이론의 기본 개념은 제일 작은 입자에서부터 머나먼 별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모든 물질이 단 하나의 끈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그 끈은 진동하는 에너지이며, 우주는 진동하는 끈들의 연주로 만들어낸 교향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말과 행위로써 자신을 드러내도록 배운다. 다양한 공동체 안에 하나의 끈으로 이어진 구성원으로서 언어 소통을 통해 사회적 참여와 보편적 사고를 가지며, 자기 이해를 위한 모든 만물로 이루어진 끈을 향유한다. 세상 만물은 끈 아닌 것이 없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끈에 의해 연결되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끈의 에너지들이 인간을 구성하고 사고하게 한다. 세상에 충만한 끈의 에너지들은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나의 삶은 독자적인 삶이 아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과도 유기적 관계를 가지며 공동체적 관계를 이루고 살아간다. 인간은 공동체적 삶의 관계 속에서 오류가능성의 존재임을 인식하게 되고 타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해 나간다. 그러한 자아성찰로 시인들은 언어의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하나의 끈으로 형성된 공동체적 삶의 거대한 융합을 거쳐 끊임없이 사유하는 것이다.

 

고향 마을에 하천 공사를 한다고

포크레인 여러 대가 하천 바닥을 퍼내고 있다.

작은 새의 보금자리도 막 피어나는 풀꽃들도

사정없이 부서져서 트럭에 실려 가고 있다.

전두측두엽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의 뇌 속처럼

수없이 깎여나가는 소중한 추억들

톱날 같은 삽날이 부릉거릴 때마다

아름다운 내 어린 날들이 수없이 파여져 나간다.

아내의 기억 속에서도 하루에 몇 십 조각씩

금가루들이 부서져 내린다.

(중략)

망각의 날개는 왜 가장 아름다운 것부터 지워가는 것일까.

하천 정비가 끝나면

기억할 것들도 사랑할 것들도 모두 파여 나간 고향 냇가에는

머물 곳을 잃은 물들만 외면한 채 달려가겠지.

포크레인의 폭력에 아름다운 어린 날은 모두 깨어졌지만

힘겹게 혼자 남아 뒤뚱대는 배꼽바위 모양으로라도

아내의 수첩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고 싶어서

오늘도 아리셉트를 챙겨주기 위해 아내의 잠을 깨운다.

-엄기창,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일부

 

  엄기창 시인은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의 뇌와 포크레인에 파괴되어 가는 고향마을을 대비하여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다. 아내의 뇌 속에서 뇌세포들이 파괴됨으로써 금가루 같이 아름다운 기억들이 사라져간다. 그것은 어린 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고향이 개발의 시대적 흐름에 밀려 파괴되는 것과 동일시된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자연의 파괴를 망각으로 환치시켜 아름다운 순간들이 다 지워진다 해도 아내의 수첩 속에서만큼은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고자 하는 시인의 간절한 사랑을 표현했다.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아내를 지켜보는 삶은 절박한 현실이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 포크레인이 하전을 파괴할 때 엄기창 시인의 어린 날들이 파여져 나가고, 아내의 기억 속에서 금가루들이 부서져 내리는 것은 운명공동체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향의 하천의 파괴는 곧 엄기창 시인의 추억의 파괴이며, 아내의 소중한 기억의 파괴가 된다. 그 속에서 힘겹게 혼자 남아 뒤뚱대는 배꼽바위 모양으로고향에 남듯 아내의 수첩 속에 남기를 소망하는 것은 아내와 동일화된 존재로서의 간절한 염원이 된다. 변하는 현실 속에서 엄기창 시인은 시간을 뛰어넘어 천륜적 사랑의 끈을 끝끝내 놓지 않으려 한다.

 

시문학20209월호(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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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상징

엄기창론 2020. 5. 23. 09:58

이달의 문제작

 

 

          다시, 상징

 

                                  김지숙시인문학평론가

 

 

 

나이는 마음이다.

 

스물이라 생각하면 가슴에서

풀잎의 휘파람 소리가 나다가도

일흔이라 생각하면

은행잎 노란 가을이 내려앉는다.

 

일흔이라도

스물처럼 살자.

언제나 봄의 빛깔로 살아가자.

                     -엄기창, 나이의 빛깔전문

 

  휠라이트는 언어의 긴장감의 정도에 따라 상징을 협의의 상징과 장력상징으로 나눈다. 협의로서의 상징은 관습적 상징을 또 다른 말로 칭한 것으로 사회나 조직 내에서 부르는 의미가 한정된 상징을 말한다면, 장력상징은 필연적으로 의미가 만들어지므로 다소 애매한 점을 특징으로 든다. 이는 개인에 의해 탄생되므로 반드시 개인의 내적 특징이 가미되어 의미가 조직되는 점이 필수 요소로 작용하는데 여기에는 개인만의 깊은 상상력과 연상이 관련된다.

  상징은 어떤 내적 상상력에 힘입어 이미지가 창작되는지 살펴보는 과정에서 필요하며 이는 구체적인 실체가 없지만 이들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어떤 것이 어떤 실체로 드러나는 지의 모습을 찾는 것으로 완성도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상징은 개인이 시에서 각각 다른 의미를 부여하므로 언제나 새롭게 탄생되며 그 대상은 늘 새로운 창조물이 되는 특징을 띤다. 물론 시인이 의도한 관념이나 비가시적인 이념을 암시하기도 하고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대상이 상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에 비가시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고 이를 암시하는 구체적인 상징만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공자는 은행나무 아래 단을 만들어 제자를 가르쳤기에 공장의 말씀을 가르치는 곳을 행단이라 하고 후에 은행나무는 교육과 청렴의 상징으로 상징되었으며, 15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아왔으며 빙하기에도 살아남은 살아 있는 화석이라 칭하는 것도 은행나무가 지닌 상징성에 기인된다. 김수영의 ’()은 인간을 상징하며 박성룡의 ’(풀잎)은 선한 자연의 힘을 표상한다.

  엄기창의 시 나이의 빛깔에서 은행나무과 대조를 이루는 사물로 표상된다. 화자는 사람의 나이를 젊고 힘 있을 때의 사물은 , 푸릇한 휘파람소리를 내는 풀잎으로 표상되고 나이든 때의 모습은 가을이 내려앉은 노란 은행나무에 견준다. 시에 나타나는 젊음의 힘’ ‘유연성’ ‘승리등을 상징하며, ‘은행잎’(나이의 빛깔)은 퇴락의 의미를 지닌다. 노란색은 시각적 특성으로 보면 두 분류로 나뉜다. 그것은 명랑’ ‘힘참’ ‘전진’ ‘행운등을 의미한다. 또한 황금색으로 보면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 ‘부귀영화’ ‘역동성’ ‘즐거움’ ‘생동감등을 뜻한다. 반면 차갑고 퇴락하는 의미와 연상되는 참회자로서의 성직자를 상징하는 색의 의미를 지닌다. 시에서 은행나무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기보다는 푸릇한 의 나이로 살아가고픈 화자의 심정을 감안할 때에 후자의 의미를 더 강하게 내포한다.

 

                                                                                               『시문학582(202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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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문제작>


잃어버린 자연을 찾아 배회하는 상상력

 

양병호

(시인 전북대 교수)

 

 

빈 들에

바람의 살 내음이 가득하다.

하루의 일 다 마치고 황혼을 바라보는

아버지 야윈 뒷모습 같은 허수아비.

나는 겨울 녘 들풀들의 신음마저

사랑한다.

박제로 남아있는 풀벌레소리들의

침묵도 사랑한다.

황금빛 가을에 이루어야 할 삶의 과제들

모두 마치고

부스러져야 할 땐 부스러지는

저 당당한 퇴임退任

눈부신 정적靜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먼 산사 범종소리 들을 채우면.

수만 개의 번뇌처럼 반짝이는 눈발

눈발 속으로 꺼지듯 지워지는 허수아비

  -엄기창, 겨울 허수아비전문

 

이 시는 겨울 들녘의 허수아비를 통해 노년의 인생을 서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허수아비는 노년에 이른 시적 화자의 마스크/아바타로 기능하고 있다. 시적 화자의 노년은 다양한 자연의 이미지와 상상력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소멸의 아름다움을 자연 사물과 풍경의 유려한 직조를 통해 감각적으로 구상화시키고 있다.

시인의 자연에 대한 인지는 바람의 살 내음이라는 감각은유를 통해 탁월한 표현효과를 성취한다. 여기서 바람은 화자의 살아온 생애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압축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나아가 무색무취의 바람살 내음이라는 구체적 감각을 부여함으로써 추상을 구상화하고 있다. 말하자면 빈 들에/ 바람의 살 내음이 가득하다는 화자의 열정적인 생애가 공허한 세계를 충만하게 변용하는 풍경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시인은 텅 빈 공허의 세계 속에서 허수아비에 주목한다. 그는 허수아비로부터 아버지를 환기한다. 물론 이러한 직관은 화자 자신에게로 전이되어 나아간다. 예컨대 시인의 상상력은 들판의 허수아비로부터 아버지로 또 다시 자아에게로 투영된다. 결국 화자는 노년에 이른 자신의 삶이 아버지의 살아온 생애와 겹치는 것임을 자각한다. 다시 말해 인생의 공통성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 공통성은 야윈 뒷모습으로 표상된다. 다시 자신과 아버지 둘 사이의 인생의 공통분모는 허수아비로 수렴된다. “허수아비는 삶/인생에 대한 허무적 페이소스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말하자면 인생이란 허수아비의 이미지와 같이 공허하고 운명론적인 것임을 감각적으로 표출한다.

노년에 이른 화자는 이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정서를 드러낸다. 그의 시선은 죽음의 계절에 당도한 들풀의 신음풀벌레 소리의 침묵에까지 확산되어 나간다. 화자는 이렇게 소멸이 예정되어 있는 자연 사물들이 자아의 존재론적 상황과 유사함을 이해한다. 화자는 궁극적으로 자연 사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론적 위상을 읽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사랑하는 자연 사물의 소멸의 운명은 결국 자신의 삶으로 치환된다. 화자는 자신의 존재론적 소멸의 상황에 대한 연민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상징/죽음 앞에 당도한 자연 사물들은 삶의 과제들을 수행한 뒤 순연히 운명을 맞아들이고 있다. 그것은 당당한 퇴임으로 표상된다. 자연 사물들의 퇴임은 기실 화자의 존재론적 운명이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존재론적 소멸에 대한 화자의 태도는 의연하고도 강직하다. 그러한 당당한 태도는 부스러져야 할 땐 부스러지는생로병사라는 자연의 이법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상징을 수긍하는 화자의 의연한 자세는 눈부신 정적의 순간에 삶의 번뇌를 해탈하는 범종소리와 조우한다.

이 시는 허수아비라는 사물을 통해 존재론적 고뇌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 존재론적 고민은 허무와 소멸의 관념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화자의 존재의소멸과 허무를 자연의 이법으로 당당하게수긍한다. 그리하여 존재론적 허무와 소멸에 대한 고뇌는 긍정적인 수용의 태도로 인하여 맑고 투명한 정서로 승화된다. 이 시의 이러한 관념과 정서는 다채롭고 선명한 자연 사물과 이미지를 통하여 구체성과 감각성을 훌륭하게 성취한다.

 

 

시문학20183월호 이달의 문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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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명시조 감상 - 엄기창 편

엄기창론 2018. 3. 15. 15:36

한국 명시조 감상

 

                                          - 엄기창 편

 

 

                                       석야 신웅순

 

1.

 

시조와 시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3612소절 형식의 유무? 맞다. 그러나 그만으로 말할 수 없는 구석이 시조에게는 있다.

시조는 시조시가 아니라 그냥 시조이다. 그것이 다르다. 음악과 함께 있던 시조가 1920, 30년대부터 읽고 짓는 시조로 탈각, 지금은 원 의미와는 달리 자유시와 대가 되는 정형시의 한 형태로 굳어졌다.

시는 자유시라 사용 공간이 매우 넓다. 규격화된 시조와는 견줄 바가 못 된다. 애초에 음악이었던 시조창에서 시만 빼내 형식에 맞게 사용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조를 시조시라고 하자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맞다. 시조에 내재된 가락을 배제하고 나왔으니 시조는 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형시일 수만 없는 것이 또한 시조의 숙명이기도 하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합니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시는 시다워야하고 시조는 시조다워야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시조가 시가 되어가고 있는 작금에 적절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시조시를 시조로 회복시킬 때가 되었다. 사람들은 회복제가 언어의 음악성이라고 말들하고 있다. 자유 시인들이 시조를 쓰기 시작했다.

모 원로 비평가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유 시인들이 이제 철이 드는구먼

흘려들을 수만 없는 가슴 치는 말이다. 일단 논의는 뒷담으로 미뤄둔다.

 

2.

 

어느 날 엄 시인께서 봄날에 기다리다라는 시조집을 부쳐왔다. 자유 시인이 웬 시조집을? 언젠가 같이 한 식사 자리에서 필자한테 저도 시조를 씁니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그냥 흘려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시조집을 보내왔다. 엄 시인이야 대전에서 시 잘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어 시조도 잘 쓸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 시인 시조를 알아야하고 사랑해야한다는 당위성, 그 하나만으로도 필자의 졸필은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의 하이꾸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갖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가. 얼마나 세계에 많이 알려져 있는가를 생각하면 시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참으로 낯 들기가 부끄럽다.

 

3.

 

차 마시다 창 너머로

봄빛 새론 산을 본다

표구하지 않아도

늘 거기 걸린 풍경

상큼한 녹차 맛처럼

가슴으로 다가온다

 

한사코 초록빛을

놓지 않는 산이기에

시드는 난을 위해

창 열고 산을 맞다

성긴 잎 사이에 꽃대

혼불 하나

켜든다

 

- 경칩일기전문

 

조지훈의 파초우를 읽는 듯하다. 봄빛이 새롭다. 멀리 있지 않은, 녹차 맛처럼 가슴으로 다가오는 산. 표구하지 않아도 늘 거기에 풍경이 걸려있는,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어느 선비의 온화하고 따뜻한 모습이다.

선비는 난을 키우고 있다. 한번도 초록빛을 놓지 않는 산이기에 난을 위해 창을 열었다. 겨우내 동안거에 들었던 난 하나가 산을 맞으며 꽃대를 세워 혼불 하나 켜들었다. 난도 산에서 산빛을 빌려오고 물소리를 빌려와야 꽃대를 세우고 꽃을 피울 게 아닌가. 매화는 사람을 고상하게 하고 난은 사람을 그윽하게 한다. 산과 마주한 어느 젊잖은 충청도 선비의 수묵화 한폭이다.

이렇게 엄시인은 시조 한 수를 시조집 첫장에 앉혀놓았다. 몇 장을 더 넘겼다.

 

시집 제목으로 쓴봄날에 기다리다에 눈이 멎었다. 박용래 시인의 구절초를 생각나게하는 시조이다. 돌아가신 누님을 위한 헌정 시조이다.

 

작은 누님,

오셔요.

버들피리 불게요

 

회재 높아 못 온다 해서

낮게 깎아 놓았어요.

 

산굽이

돌아 돌아서

아지랑이만 날리네요.

 

산그늘이

내려와서

장막처럼 드리우고

 

남가섭암 불빛이

별빛으로 일어서요.

 

밀양땅

산자락에 누운

누님 기다리는 봄 하루

 

-봄날에 기다리다전문

 

그렇다. ‘누님어머니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겨운 말이다. 시인은 몇 년 전 누님의 부음을 듣고 대구까지 울면서 갔다. 밀양 땅에 묻고 돌아와서는 봄날 앵두꽃 필 때쯤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 하염없이 누님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어머니, 누님만한 정 많은 이가 천지 어디에 있을까.

버들피리 불 테니 누님은 이 소리를 듣고 오라는 것이다. 회재가 높아 못 온다 해서 산도 낮게 깎아놓았다는 것이다. 누님의 첫제사에 누님이 좋아하던 고향의 솔바람소리, 뻐꾸기 울음소리를 선물로 가져와 누님의 무덤가에 심어 드렸다고 한다.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그 산굽이. 산자락에 누운, 정 많은 오지 않을 누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굽이굽이 정 많은 시인. 이도 잔잔하고 그윽한 산자락 같은 수묵화 파스텔톤 한 폭이다.

 

계룡산 산행 길에

단풍잎 하나 따서

아내의 화장대에

몰래 올려놓았다

아내를 사랑한다는

내 가을 편지이다.

 

얼핏 연 책갈피에

내게 보낸 연서 한 장

곱게 말린 단풍잎에

배어있는 따스한 정성

아내도 날 사랑한다는

홍조 어린 답신이다.

 

- 가을편지전문

 

시화가 괜히 생긴 것은 아니다. 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어야 한다. 시인은 계룡산 갑사를 다녀오신 모양이다. 춘마곡, 추갑사라하지 않던가. 갑사만큼 아름다운 만추의 단풍은 없다.

계룡산 산행길에 단풍잎 하나 따서 아내 화장대에 올려 놓았다. 아내에게 쓴 가을편지이다. 시집이었나 싶다. 책갈피에 연서 한장 곱게 말린 아내의 따스한 정성, 단풍잎이 들어있다. 아내의 홍조 어린 답신이다. 단풍잎 하나가 사랑의 편지가 되고 사랑의 답신이 되는 평범한 것 같지만 비범한 신의 한 수이다.

책이 있으면 책을 읽어야 하고 술이 있으면 술을 마셔야한다. 재자가인이 있으면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해야한다. 아내가 있으니 지극히 사랑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잘 쓰는 사람은 이렇게 시를 쉽게 쓴다.

 

벽을 비워 놓았더니

산이 들어와 앉아 있다

 

꽃 향기

골물 소리

집안 가득 피어난다

 

채우고 채워진 세상

하나 비워 얻은 평화

 

- 여백전문

 

벽에 장롱을 비웠더니 산이 대신 들어와 앉았다. 산이 들어오니 꽃향기, 골물소리 집안 가득 피어나지 않는가. 세상이 채워진 기분이다. 하나를 비워 얻은 커다란 평화이다.

자연 합일, 안빈낙도의 경지랄까. 김장생의 시조가 생각난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 삼간 지어내니/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 한 간 맡겨 두고/강산은 들일 데가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세상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가난하지만 가지지 못할 뿐이지 누릴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지금인들 못 누릴 게 무엇이 있는가. 이를 두고 누가 시조를 싸잡아 음풍농월이라고 말들을 하는가.

물에서 나는 소리가 네가지 있는데 폭포 떨어지는 소리,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 여울물 지는 소리, 붓도랑 흐르는 소리가 그것이고,바람이 내는 소리도 세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솔바람 소리, 가을 잎 지는 소리, 물결치는 소리가 그것이라는 것이다. 현대에 와 이런 여유의 참맛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아깝고 서러운 것이랴. 한낱 시를 치유거리로만 생각할 것인가.

 

4.

 

시조창은 뻗는 음이 있고 떠는 음이 있고 흔드는 음이 있다. 속청소리도 있고 막는 소리도 있고 푸는 음도 있다. 가곡창에는 처내는 음이 있고 굴리는 음이 있고 짚고 넘어가는 음도 있다. 밀어올리는 음도 있고 잇고 끊는 음이 있고 강하게 내는 음도 있다.

시조는 이런 음악성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시조는 시와는 판연 다르다. 언어만 같을 뿐 태생 자체가 다른 것이다. 시에도 음악성이 있는데 시조에 있어서 더더욱 말해 무엇하겠는가. 필자의 우문일지 모르나 최소한 그런 생각을 갖고 시조를 써야 맛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겨울 시인의 훈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휴머니티한 시조 한편이다.

 

눈 녹는 시장 골목

비둘기는

맨발이다

신발 전 털신 한 짝

사 신기고 싶구나

종종종

서둘러 가는

머리 위엔 하얀 눈발

 

-비둘기- 시장풍경 5첫수

 

엄기창 시인은 충남 공주 출신이다. 공주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5년 월간 시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2014년 퇴임, 정훈문학 대상 등을 수상한 바가 있다.

엄시인의 시조를 소개한 것은 시재 있는 많은 자유 시인들이 시조를 많이 사랑하고 많이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이다. 시조 쓰는 일이 새채비이기는 하나 조금만 익숙해지면 쓸 수 있는 것이 또한 시조이기도 하다. 시조는 우리 선인들이 수백년을 배앓이 하며 낳은 옥동자가 아닌가. 그 옥동자가 지금까지 700여년을 이 땅에서 죽지 않고 살아오지 않았는가. 여기라도 좋다. 많은 이들이 쓰고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 시인들은 필히 시조를 쓸 지언저.

한국문협 이사장 문효치 시인도 필자에게 신작 시조집 나도 바람꽃을 보내왔다. 주옥같은 명편들이다. 뽑아 한 수 소개한다.

 

바람 속

파도 소리

 

못 말리는

몸살이다

 

누구를 사모하여

바다 끝에 기대섰나

 

뒷산이

우루루 몰려와

물속으로 뛰어 든다

 

-우루루 - 수송나물전문

 

 

 

 

-시조문학,2018.봄호,92-98.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