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가


사비가

淸羅 嚴基昌
낙화암 절벽 위엔 다홍빛
진달래꽃
천년으로 이어진 접동새 울음

달 밴 강물 속에
손짓이 있고
꽃잎은 한 잎씩 몸을 던진다.

백제도 신라도 아닌데
사비수 물소리는
젖어 흘러서,

접동새야!
올봄엔 떡갈잎 수풀 속에
소리 맑은 새끼새 알을 낳거라.
posted by 청라

조룡대


조룡대

淸羅 嚴基昌
누군가 한 사람 쯤
눈뜨고 있을 것 같아서
죽어서도 저승에 들지 못하고
歡樂宴 풍악 소리에
한숨짓는 용이 있을 것 같아서
조룡대 하늘을 이고 서 있다.
백마강 물결 따라
그 때처럼 노래소리는 들려오고
길게 누운 용의 잠 속으로
핏빛 눈물처럼 투신하는 진달래 꽃잎,
낙화암 가슴께를 치며 흐르는
세월을 보면
반도는 하나인데
마음들은 왜 이리 갈갈이 찢겨 펄럭이는가?
벗이여!
의자왕도 소정방도 보이지 않는
조룡대 위에 모두 와
물결의 속삭임을 들어 보게나.
욕심으로 뭉쳐진 바위도 부서져 모래알 되고
백마강 융륭한 흐름 위에 서면
인생은 잠시 반짝임일세.


posted by 청라

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며

淸羅 嚴基昌
혼자 일어나 파란 힘줄 돋은
계룡산
등성이를 오르면
이마 위에 말갛게 떠 있는 여백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바람이 칼날처럼 후리고 가고
발아래 겨울을 인 작은 산들이
눈발에 부서지며 녹아들고 있다.
하늘 향해 한번 뾰쪽
솟아보지도 못하고
둥글게 둥글게 잦아든
충청도의 산이기에
흰옷 입은 모습이 더욱 가슴 저미게 젖어오는
산정에 서면
허리 낮추고
억새풀이나 붙안고 사는 능선마다
능선마다
듣는 이 없는 새 울음은 내리고 있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