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浮石寺 가을

 

 

잘 익어 울긋불긋

부처님 말씀

 

귀 열면 서해바다

피안彼岸이 코앞

 

향내 묻은 목탁소리에

씻고 또 씻어

 

다 벗은 벚나무처럼

말갛게 섰네.

 

 

2018. 11. 3

문학사랑126(2018년 겨울호)

posted by 청라

떼거리

떼거리

 

 

매미들

목청 높여

떼거리 쓰고 있다.

 

벤치에

앉아 쉬던

할머니 일어서며

 

힘없는 늙은이가 뭐

피해야지 별 수 있나.

 

 

2018. 11. 1

posted by 청라

가을 길

가을 길

 

 

, 여름 아름답게 걸어온 사람은

쑥부쟁이 꽃 모여서

피어있는 의미를 안다.

연보랏빛 기다림이

불 밝히고 있으니 가을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도

반짝반짝 빛나니 가을이다.

사랑도 함빡 익으면 결국은

떨어지는 것을

끝나지 않는 잔치 어디 있으랴.

나뭇잎들 색색으로 물들어

결별訣別을 준비하는 가을 길을 걸으면

기다림도 때로는 행복임을 안다.

 

2018. 10. 23

대전문학85(2019년 가을호)

posted by 청라

깨진 아리랑

 

 

늙은 가수 소프라노로

아리랑을 부르네.

 

호흡은 가빠져

박자는 이가 빠지고

 

높은 소리 갈라져

깨진 아리랑

 

깨어져 막걸리처럼

맛난 아리랑

 

 

2018. 10. 12

posted by 청라

각원사 청동대좌불

각원사 청동대좌불

 

 

어떻게 살아가면 저리 고운 모습일까

서편 하늘 걸린 눈빛 중생衆生들 복을 비는

입가의 따뜻한 미소 봄 벚꽃이 피어나네.

 

사랑도 집착執着이라 훨훨 벗어 버리려도

작은 아픔에도 몸이 먼저 타올라서

마음은 향불 올리는 잔정에도 짠하다

 

 

2018. 9. 29

문학사랑126(2018년 겨울호)

posted by 청라

산마을

산마을

 


횃소리

닭울음에

산이 와르르 무너져서

 

집집 골목마다

송홧가루 덮인 마을

 

아이들 놀이소리도

빤짝 켜졌다 지는 마을

 

 

2018. 9. 28

posted by 청라

여름을 보내며

여름을 보내며

 

 

목백일홍 꽃빛에

졸음이 가득하다.

한 뼘 남은 목숨을

다 태우는 매미 소리

친구야, 술잔에 담아

한 모금씩 마시자.

 

 

2018. 9. 9

posted by 청라

산길

산길

 

 

산길을 오르는 것은

산에 물들어가기 위해서다.

산으로 녹아들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 몸으로 산이 되기 위해서다.

 

조그만 풀꽃으로 피면 어떠리.

초록빛으로 같이 물들다가

새들의 노래를 모아

자줏빛 내밀한 속말 한 송이로

서있으면 좋겠네.

 

솔잎 스쳐온 바람이

미움을 벗겨가고

꽃향기 다가와 욕심을 벗겨가고

 

말갛게 벗고 벗어

투명해져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어떠리.

 

내가 정상을 향해 산길을

끝없이 올라가는 것은

모든 것을 발아래 두려는 것이 아니다.


품어 안고 섬기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2018. 9. 4

문예운동142(2019년 여름호)

현대문예105(20197,8월호)

 

 


posted by 청라

개화開花

개화開花

 

 

꽃필 때

꽃빛에

아침노을 마실 왔다.

시작은 아름답게 해야 한다고.

 

 

2018. 8. 28

posted by 청라

딸 바보

딸 바보

 

 

아빠랑 꽃밭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엔

내 얼굴만 가득가득 담겼네요.

 

아빠는

어떤 꽃보다

내가 제일 예쁘대요.

 

 

2018. 8. 11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