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

그믐달

 

 

돌무덤에 도라지꽃

일찍 죽은 형님 영혼

 

어머니 가슴 속에

대못으로 박혔더니

 

창공에

아픔을 삭혀

밝혀놓은 등불 하나

 

 

 

2016. 11. 24

posted by 청라

이상한 나라

이상한 나라

 

 

꽃 한 송이 받아도

벌을 받는 나라


물 한 모금 주어도

죄가 되는 나라

 

정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나라

 

국민들은 죽어나도

웃고 있는 나라


내 손자 손녀가 

살아갈 나라


이 쪽 저 쪽 돌아봐도

막막한 나라

 

 

2016. 11. 23

posted by 청라

이 가을에

이 가을에

 

 

술잔에

들국화 한 송이 띄웠다.

 

! 가을 냄새

 

술 마시고

나는 가을에 취해버렸다.

 

인생 뭐 별 거 있는가.

웃으며 살면 그만이지

 

넘기 힘든 고개도

한 발 한 발

넘다 보면 정상이라네.

 

찌푸리고 살지 말고

가을이 오면

그냥 단풍이 되세.

 

 

2016. 11. 20

posted by 청라

둥치에 핀 꽃


사진  김주형



둥치에 핀 꽃

 

 

젊음은 벽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불의不義한 역사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며

 

내 피를 연소燃燒시켜

거친 땅에 정의正義를 세운다.

 

사월의 눈보라 앞에서도

굳센 정신의 심지에 불을 붙여

 

사랑을 완성한

저 꽃을 보라.

 

청춘은 쉽게 꺾이지 않아서

외로워도 아름답다.

 

2016. 11. 18

문학저널163(20176월호)

 

 

posted by 청라

가을 산행

가을 산행

 

 

오욕을 털어내니

가지들 정결하다

은밀한 골물 소리

속진俗塵을 닦고 있나

지나온 길 돌아보니

허물만 깔려있네.

 

버리고 다 버려도

사랑만은 못 버려서

하나 남은 단풍잎이

유독 붉게 익어있다.

불타는 외침만 한 등

빈 산 환히 비춘다.

 

2016. 11. 16

 

posted by 청라

조룡대, 머리를 감다

 

 

소리치는 사람들은 깃발이 있다.

깃발 들고 모인 사람들은 

제 그림자는 볼 줄 모른다.


조룡대에 와서

주먹질 하는 나그네들아

조룡대는 날마다 죽지를 자르고 싶다.


부소산에 단풍 한 잎 물들 때마다

어제보다 더 자란

소정방의 무릎 자국

가슴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 화인火印 


지느러미라도 있었다면

천 년 전 그 날

물 속 깊이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았을 것을


깃발 들고 목청만 높이는 사람들아,


비듬처럼 일어나는 부끄러움을 식히려고

백마강 물살을 빌려 조룡대는

오늘도 머리를 감는다.

 

2016, 11. 8

심상 20176월호

posted by 청라

비둘기

비둘기

 

 

허기진

비둘기가

눈발을 쪼고 있다.

 

아무리 삼켜 봐도

요기가 안 되는 눈

 

십이월 바람의 칼날

서성이는 눈동자

 

 

2016. 11. 7

posted by 청라

주례사

주례사 2016. 10. 30. 20:50

주례사

 

 

  가을이 곱게 익어가는 토요일입니다. 엊그제 플라워랜드에 갔더니 국화꽃들이 농익을 대로 익어서 늦은 가을을 환하게 불 밝히는 것을 보고 , 원숙하다는 것은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고 처음 깨달았습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여 서로 다른 영혼으로 살다가 오늘 비로소 한 몸이 됩니다. 그 모습이 마치 연리지와 같아서 저는 두 사람의 인생이 결혼을 통해 화창해지라고 비는 마음을 연리지를 통해 말해보려 합니다.

  연리지는 서로 뿌리가 다른 두 가지가 서로 엉겨 붙어 한 나무로 살아가는 것을 이르는 말로, <후한서> ‘채옹편에서는 처음으로 를 상징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면 이제 부모님은 네 분이 되겠지요. 자고로 상대편의 부모님께 잘못하고 사랑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오늘 배우자를 통해 새로 인연을 맺는 부모님을, 가족을 진정 내 부모님,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모실 때 더 튼튼하고 싱싱한 연리지가 탄생된다는 것을 신랑 신부는 가슴 깊이 인식하고 실천해주길 바랍니다.

  연리지의 상징적 의미는 점차로 남녀 간의 영원한 사랑’, 부부애등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뿌리가 다른 나무끼리 한 나무로 살아가며 다시 찢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 필요할까요. 저는 바로 변치 않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불같이 뜨겁던 사랑도 잘못 가꾸면 차갑게 식어버리고 맙니다. 이 사랑을 잘 가꾸기 위해서는 늘 배우자를 믿고 사랑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려고 자신을 희생할 때 천 년 만 년 푸름을 잃지 않는 연리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교훈 또한 깊이 되새길 것을 주례는 신랑 신부에게 당부합니다.

  저는 얼마 전 제 세 번째 시집인 <춤바위>부부라는 시를 발표했습니다. 이 시에는 연리지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이 가득 담겨 있기에 주례는 하객 여러분이 증인으로 참석한 이 자리에서 신랑과 신부에게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부부

                                엄기창

 

나는 마음의 반을 접어서

아내의 마음 갈피에 끼워 넣고 산다.

더듬이처럼 사랑의 촉수를 뻗어

아내의 작은 한숨마저 감지해 내고는

아내의 겨울을 지운다.

어깨동무하고 걸어오면서

아내가 발 틀리면 내가 발을 맞추고

내가 넘어지면

아내가 일으켜주고

천둥 한 번 일지 않은 우리들의 서른여덟 해

사랑하고 살기만도 부족한 삶에

미워할 새가 어디 있으랴.

 

  늘 마음의 반을 접어 서로의 마음 갈피에 끼우고, 상대방의 작은 번민까지 감지해 지워주려는 마음, 고달픈 인생행로에서 한 사람이발을 틀리면 서로 맞춰가려는 마음, 사랑하며 살기만도 부족한 인생에서 미워할 새가 있겠냐는 강한 의지, 이런 것들을 잊지 않는다면 두 사람의 일생은 분명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아름다운 새 시작에 축복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20161030

                                                     주례 엄 기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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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성加林城의 가을

 

 

백가苩加는 무슨 소망을 돌에 담아 쌓았을까.

가림성加林城의 가을은 억새 울음에 젖어있다.

상좌평上佐平에 있으면서 또 무었을 꿈꾸었기에

피로 일어났다가 피로 쓰러졌는가.

멀리 보이는 금강 하구엔 배 한 척 보이지 않고

부지런한 세월만 바다로 흐르고 있다.

역사 앞에 서면 인생 부귀는 한낱 구름인데

날리는 신문 조각마다 백가苩加살아있네.

posted by 청라

낙화암

낙화암

 

 

백마강으로 돌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썩다 만 모과처럼 

낙화암은 늘 가슴이 아프다.

아침나절 신음하던 바람들이

절벽을 흔들다가 고란사 종소리를 따라간 후

비가 내렸다.

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루 종일 유람선에서만 

조룡대 전설이 피었다 질 뿐

신라도 당나라도 없는 세상에

삼천궁녀의 한숨이 가슴에 닿아 

꽃으로 피는 사람 있을까.

하구 둑에 막힌 절규들만 하루 종일

물새 울음으로 출렁이는 백마강을 내려다보며

나는 한 방울의 눈물에도 촉촉해지는 

천 년의 이끼가 되고 싶었다.

 

 

2016. 10. 21

대전문학74(2016년 겨울호)

시문학20178월호

시학과 시창간호(201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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