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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춘일春日
까치가 요란하게
울다 간 하루 종일
사립문 열어놓고
정류장만 바라보네.
막차는 지나가는데
찬바람만 휭하네.
2019. 8. 18
글
달빛에 잠든 마을
달빛에 잠든 마을
어디나 빈 세상 같다
꽃들도 물소리도
그림인 양 숨죽이는데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도화지를 찢는고.
2019. 8. 17
글
망초꽃
별 같다
누이 같다
귀뚜리 울음 같다
너무도 친근해서
귀한 줄 모른 사람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함께 가자 웃는다.
2019. 8. 14
글
울며 울며 크는 새
처마 밑 제비집에
새 식구가 늘어났다.
동트는 아침부터 줄기차게 운다.
혼자 있어도 울고
어미를 보아도 울고
이 세상 새들 중에
울지 않고 크는 새는 없더라.
울며 울며 견디다 보니
날개가 돋더라.
아픈 삶 이기고 나니
하늘을 날고 있더라.
2019. 8. 9
글
사랑
달빛으로 새끼 꼬아
당신 사랑 엮어 걸면
혼자 새울 그믐밤에
등불인 양 빛을 내어
어두운 마음 밭머리
밝혀주고 있으리.
2019. 8. 6
글
둘이라서 다행이다
유등천변을 걷다가
두루미끼리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두 마리라서 다행이다.
만일 한 마리만 서 있었다면
들고 있는 한 다리가 얼마나 무거웠을 것인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숲과
멀리 구름을 이고 있는 산들의 침묵
부리 끝에 걸치고 있는 노을이 얼마나 쓸쓸했을 것인가.
가끔은 내 코고는 소리를
노랫소리 삼아 잠든다는 아내와
아내의 칼도마 소리만 들어도 한없이 편안해지는 나
둘이라서 다행이다.
아침저녁 밥을 같이 먹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내 긴 인생 고개엔 겨울바람만 몰아쳤을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사랑한다는 말은 전혀 아낄 일이 아니다.
무심코 넘어오는 큰소리는
상추에 싼 밥처럼 꿀꺽 삼킬 일이다.
저기 산 너머로 황혼이 가까워지는데
남은 길은 꽃밭만 보고 걸어가자.
생각만 해도 웃음 번지는
손잡고 걸어갈 사람 하나 있어서 다행이다.
2019. 8. 2
『충청예술문화』90호(2019년 9월호)
『PEN문학』2021년 7․8월호
글
어느 여름날
호박 덩굴 감아 올라간 흙담 밑이 고향이다.
말잠자리 깊이 든 잠 한 토막 끊어내어
무작정 시집보내던 어린 날의 풋 장난
담 따라 옥자 순자 송이송이 피어나면
일없이 호박벌처럼 온 종일 헤매던 골목
밥 먹자 부르던 엄마 감나무에 걸린 노을
건넛산 부엉이 울음 방죽엔 처녀 귀신
쪽 달빛 한 줌이면 콧김으로 날려버린
그 세월 먼 듯 가까이 안개처럼 아른댄다.
2019. 7. 31
글
벽파진 함성
아픔에 꺾이지 않는 것들은
모두 함성으로 살아있다.
왜란에 반도가 불타오를 때
열 두 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낸 사람들
바다 물은 섞이고 흘러갔지만
그들의 피는 올곧게 땅으로 스며들어
황토마을 땅들이 왜 붉은지 아는가.
피에서 피로 전해지는
꽃보다도 붉은 마음
아름다운 것들은 세월의 지우개로
지울 수 없다.
벽파진에 와서 눈을 감으면
파도 소리에도 바람 소리에도
그들의 함성은 천 년을 살아있다.
2019. 7. 27
글
토마토
너무 익어서
미소 한 번 보내면
톡하고 떨어지겠다.
이쁜이처럼
2019. 7. 26
글
나무
나무는 허리를 곧게 펴고 서있다.
둥치 감아 올라오는 칡덩굴의 초록빛에
칼날이 번득여도
허리를 굽히는 법이 없다.
꼭대기까지 다 덮어
숨 쉴 공간 하나 없어도
하늘 향해 뻗어 나가던 꿈마저
다 막혀도
나무는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작은 틈으로 바라보면
산은 온통
풀들의 분노를 활활 피워 올린
검붉은 칡꽃 밭
풀들은 공생할 줄을 모른다.
욕심을 한 뼘이라도 더 뻗어
세상의 진액을 남김없이 빨아댈 뿐
온 산을 기세 좋게 휘감은 저 풀들의 반란
산을 지키는 것은 풀이 아니다.
칡덩굴이 무성할수록
산은 황폐해진다.
수만 톤의 무게가 찍어 눌러도
나무야, 절대 허리를 굽히지 말자.
뿌리를 넓고 튼튼하게 벌려
모진 장마가 할퀴고 지나갈 때에
산을 지켜주자.
2019.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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