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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뜸부기
저녁노을
한 모금씩
물고 와서
뱉어내어
자운영꽃 속울음을
텃논 가득 뿌려놓고
온 봄내
끓는 피 데워
몸을 푸는 뜸부기
2010. 12. 14
글
청하계곡에서
솔 사이로 새는 별을
소주잔에 동동 띄우고
보름달 곱게 깎아
떡갈잎에 한 조각 싸서
임 한 잔 마실 때마다
입에 넣어 주는 밤
산은 바람을 불러
가락을 연주하고
물은 하늘을 담아
별 세상을 꾸며주네.
임과만 둘 있는 세상
산과 물은 장식일세.
2010. 11. 30
글
선물
고향 산 솔바람을 박씨처럼 물고 가서
작은 누님 무덤가에 총총히 심어놓네요.
첫 제사 선물 삼아서 솔향기도 담아가고.
여기 솔바람은 열무김치 맛이다 야
부모님 유택 뒤로 산 뻐꾸기 울던 시절
누님의 그 말소리가 저녁달로 뜨네요.
2010. 11. 16
글
원가계에서
신선도를 보고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세상이라 생각했더니
원가계에 와서 보니
그림이 산수를 다 그리지 못하였네.
폭포 소리 녹아
솔향 더욱 그윽한 곳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면
속진(俗塵)이 말갛게 씻겨
나도 신선이 되리.
글
이달의 문제작 시>
향일암(向日庵)에서
절 마당은
무량(無量)의 바다로 이어지고
무어라고 지껄이는 갈매기 소리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바다를 지우며 달려온 눈보라가
기와지붕을 지우고
탑을 지우고
목탁(木鐸)소리마저 지운다.
지워져서 더욱 빛나는
관음상 입가의 미소처럼
나도 눈보라에 녹아서
돌로 나무로 바람으로 지워지면
갈매기 소리 알아듣는 귀가 열릴까.
겨울 바다는 비어서 깨끗하다.
비어서 버릴 것이 없다.
<시문학> 2008년 10월호
엄기창 시인은 암자를 찾아 고즈넉한 분위기에 젖는다. 그런데 시인은 ‘향일암’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아니 절에서 바다를 읽는다. 바라봄의 인식 과정을 통해 ‘바다’와 ‘절’을 한 몸으로 동화시켜버린다. 지상과 바다가 하나로 연결되고, 바다 위를 비행하는 ‘갈매기 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로 자신조차 무화된다. 이 무화 혹은 몰각의 상태는 ‘지움’의 과정을 통해 무념무상의 경지를 획득한다. 하여 종국에는 ‘목탁소리마저 하얗게 지워’진 상태에 도달한다. 조용히 지워지는 사물을 바라보며 화자는 평안한 서정에 젖는다. 아니 자신도 ‘녹고, 지워지기’를 소망한다. 꿈꾼다. 그 지워짐을 통해 ‘귀’가 열리길 기대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의 모습을 깨달음처럼 독백한다. “겨울 바다는 비어서 깨끗하다./ 비어서 버릴 것이 없다.”고. 화자는 향일암의 기행을 통해 ‘지움’과 ‘비움’이라는 소거, 소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바다처럼 출렁이는 인간 세계의 욕망들을 지우고 비우고자 하는 화자의 희구가 맑고 추워서 서늘한 세한도처럼 깨끗하다.
양병호, ‘기억과 추억이라는 이름의 환상열차’
<시문학> 2008년 11월호
글
글
현충일 애상
묵념의
나팔소리
꿈결같은 현충일
물젖은
할아버지
눈동자에 도장 찍힌
아파트
한 동에 걸린
태극기
하나,
둘…,
두 -
울…….
2010. 9. 14
글
법주사에서
일주문 들어서며
한 겹 옷 벗어버려
천왕문 지나가며
모든 허물 비워내도
부처님
앞에 서보니
버릴 것이 많아라.
절하며 뒤집는 손
욕심 가득 담겨있어
불국의 평화보다
내 소망 먼저 빌어
부처님
자애론 미소
내릴 곳이 없어라.
2010. 9. 13
글
이순耳順
지난 세월 화단 안에
고운 일만 모종하고
조금 남은 빈 터에
심을 것을 그리다가
첫 단풍
물들던 날에
모종삽을 놓았지.
새 나무를 심기보다
심은 나무나 잘 키우자.
욕심은 묽게 풀어
세월 밖에 던져놓고
식은 해
온기를 모아
시린 세상을 밝혀보자.
작년에 본 굽은 나무
올해 보니 또 새롭다.
잔가지 자를 때도
망설이고 또 망설여,
미운 것
예쁜 것들을
구별 않고 보는 나이…….
2010.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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