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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9 일그러진 유화油畫
- 2021.08.16 바다는 눈뜨고 자는가
- 2021.08.13 대양大洋이 뿔났다
- 2021.08.10 그 여자의 뜰
- 2021.08.06 절망 앞에서
- 2021.08.04 고래를 조문弔問하다
- 2021.08.03 적조赤潮
- 2021.08.01 슬픈 바다
- 2021.05.29 여성 편향적 삶의 풍경
- 2021.05.27 어머니 달빛
글
일그러진 유화油畫
새벽 갈매기 소리나 듣자고
손자 손 붙잡고 들어선 해수욕장엔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덧없이 버리고 간
지난밤 젊은이들의 유희遊戲의 흔적
우리는 하나씩 비닐봉지에 주워 담았다.
씨팔놈들 씨팔놈들
파도가 이만큼 들어와
욕하고 물러났다.
일곱 살 아이의
해맑은 도화지 위에
오래 남아있을 일그러진 유화油畫
햇살처럼 반짝이는 갈매기 소리가
파편破片이 되어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2021. 3. 20
글
바다는 눈뜨고 자는가
여수 앞바다가 빨갛게 각혈咯血하던 날
포구엔
바다로 나가지 못한
작은 배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고
가자미식혜를 잘 하는
이북할머니네 막걸리 집엔
바다 사내들만 푸념을 나누어 마시고 있다.
황토黃土를 실은 배들이
부지런히 항구를 드나들지만
뿌리고 또 뿌려봐야 새 발의 피
바다의 피부가 워낙 부스럼투성이라서
바람도 깨금발로 물을 건너고 있다.
김 서방네 양식장엔
벌써 우럭 새끼가 하얗게 떠올랐단다.
쑤시고 아픈 데가 너무 많아서
바다는 밤새도록 눈뜨고 자는가.
2021. 3. 16
글
대양大洋이 뿔났다
중앙 인도양을 달리다가 보면
대양大洋이 뿔났다.
칼스버그 해령海嶺이 로드리게스 섬에서
아덴만까지
섬 하나 없이 봉우리 문질러놓고
성질나는 밤이면 우르르 우르르
해저를 흔들며 으르렁댄다.
바다는 사막沙漠이다.
형형색색 빛나던 산호의 노래도
온난화溫暖化의 발톱에 찢기어 간다.
고국故國 남쪽 바다에 동백꽃이 핀 게 언젠데
뿔난 바다는
아직도 겨울을 벗지 못했다.
2021. 3. 6
글
그 여자의 뜰
정이 많은 여자는
아랫도리에서 언제나 진물이 흐른다.
겨울보다는 봄이 많이 머무는
그 여자의 뜰엔
탱자나무처럼 가시를 감춘 꽃들이 먼저 피었다.
바닷바람이 불러서 갔다는
남편은 세월 속에 지워지고
그 여자의 뜰이 황폐해질 때쯤
돌담이 무너졌다.
너무도 허기져서
이것저것 안 가리고 다 받아들인 바다처럼
그녀의 배는 탱탱해졌다.
그 여자의 뜰에는
파도가 산다.
뒤척이면 그냥 출렁대는 신음이 산다.
2021. 4. 17
글
절망 앞에서
송 작가 거실 벽에는
죽어가는 바다가 걸려 있다.
조가비 딱지마다 한 몸인 양 기름이 엉겨 붙고, 갈매기 몇 마리는 타르의 밧줄에 묶여 박제剝製가 되었다. 한 쪽 눈만 겨우 자유를 지켜낸 갈매기 눈망울에 담긴 해안선, 바다의 온몸에는 버섯처럼 부스럼이 돋아났다. 바위도 나무도 온 세상이 겨울 빛으로 가라앉았다.
넓게 자리 잡은 바다의 절망에선
하루 종일 한숨처럼 수포水疱가 떠올랐다.
2021. 3. 15
글
고래를 조문弔問하다
해무海霧 접힌 후에야 알았네.
어젯밤 바다가 왜 그리 숨죽이고
흐느꼈는지.
9,5m 길이의 몸에
5,9kg 플라스틱을 채우고
허연 배를 드러낸 채
누워있는 향고래
어미는 심해의 어둠 속을 헤매며
목메어 부르고 있을게다.
울다 울다 눈물이 말라
피를 흘리고 있을 게다.
저녁노을 삼베옷처럼 차려입고
곡哭을 하는 바다
갈매기 목소리 빌려
나도 고래를 조문弔問하네.
글
적조赤潮
심한 멍 자국 짓물러
바다의 신음은
온통 열꽃 빛이다.
돌아누울 힘도 없어서
혼절한 채 끙끙대는
파도는 온통 앓는 소리다.
글
슬픈 바다
바다는 비가 와도 젖지 않는다.
세상의 눈물 나는 일들은
모두 바다에 모여 있다.
작년에 아프리카에서 반란군에 살해당한
어미의 슬픔과
플라스틱 병을 삼키고 허연 배를 드러낸
고래의 눈물이
소용돌이로 울고 있다.
더 이상 버리지 마라.
아침 해를 띄워 올리는
저 바다의 싱싱한 웃음 뒤에
한 그루씩 죽어가는
산호의 비명이 포말泡沫로 부서지고 있느니.
바다는 스스로 늘 제 몸을 닦고 있지만
이미 흠뻑 젖어
더 이상 젖을 곳이 없다.
세상이 버리는 아픔
모두 꽃으로 피울 수는 없다.
글
이달의 문제작〈시〉
여성 편향적 삶의 풍경
한상훈〈문학평론가〉
『시문학』 5월호엔, 세월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한 작품들이 많았다. 황홀했거나 쓰라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현재 시점에서 호출해서 그 순간의 이야기를 원고지에 옮겨 시상을 마무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밀한 시적 세공도 필요하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사건들이기 때이다.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 몇 작품을 감상해 보기로 한다. 우선 엄기창 시인의 작품부터 들어가 보자.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때 아름답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두 잔의 커피를 시켜놓고
홀로 커피를 마신다.
외로움이 커피 향으로 묻어난다.
창밖 먼 바다엔 어디로 가는지
배 한 척 멀어지고
유리창에
갈매기 소리들이 부딪혀 떨어진다.
-엄기창,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부분
첫 구절에서 사랑에 대한 단정을 단호하게 내린다. 섣불리 규정할 수 없는 사랑 또는 삶의 오묘함에 대해 시인은 이미 도사처럼 터득한 듯하다. 겹겹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인생은 나의 욕망대로 되지 않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욕망의 종창역은 대부분 더 꼬이게 되고, 결국 인생은 추해지는 것이 아닌가. 나의 욕망을 비워내어 그냥 자연의 질서에 나를 맡겨보니, 그 자체로 아름답고 생의 여유가 생겨, 행복이 슬쩍 찾아온다. 그러기에 시인은 사랑하던 님이 가고 야속하기만 하지만 허전한 상태로 내 마음을 하염없이 풀어놓는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커피도 호사롭게 두 잔을 시켜 놓았다. 그만큼 상처의 시간은 지나갔다. 창밖을 보니, 저 멀리서, 넓고 푸른 바다에 점점 작아지고 있는 배 한 척이 보인다. 다시 외로워진다. 그러나 미소가 머문다. 완전한 사랑이 있겠는가. 사랑이 머무는 것도 잠시인 것을. 비록 외롭지만 달콤해지는 것이다. 애틋한 그리움은 서랍 속에 숨겨놓은 보석처럼 가끔씩 꺼내 보면서 언제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빛날 수 있기에.
『시문학』2021년 6월호(599호)
글
어머니 달빛
어머닌 웃음 속에 늘
만월 하나 키우신다.
정안수에 뿌리박고
기원으로 자란 달빛
이 아들 밤길 걸을 때
앞서가며 밝혀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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