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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나박김치
설날 아침 떡국 먹다 나박김치 국물에
엄마와 함께 보던 노을빛이 떠올라서
한 수저 남겨놓고서 눈에 이슬 내려라.
2013. 2. 10
글
장다리골
머리채 긴 솔바람이
골목길 쓸고 간 후
집집 텃밭마다
장다리꽃 등 밝히다.
꾀꼬리
목소리 빛으로
눈부시던 그 꽃밭…….
지금은 장다리골
봄이 와도 꽃은 없고
꾀꼬리 꽃 부르던
목소리도 사라지고
고샅길
꼬불꼬불 돌아
경운기만 가고 있네.
2013. 1. 26
글
매미 소리
사탕 하나 입에 물고 예닐곱 개는 양 손에 갈라 쥐고
휘파람 부을면서 목 빳빳이 세우고 갈 지자 걸음으로 천천히 고샅길 맴돌 적에 창현이, 천용이, 희수, 윤현이, 순옥이, 영숙이, 희순이, 희원이, 종환이, 동현이, 현자, 희익이, 학근이, 종순이 등등 일 개 소대 침 질질 흘리면서 비칠비칠 따라오며 기죽은 눈길로 내 양손만 뚫어질 듯 바라볼 때
내 마음 깊은 울안에 천둥치듯 일어서던 아! 저 백만 마리 매미 소리.
1013. 1. 20
글
滿虛齋에서
옷깃에 묻어 온 속세의
근심 몇 올이
아침 햇살에 안개처럼 풀리고
힘들여 벗지 않아도
때처럼 벗겨진 慾心 말갛게 씻겨
풀꽃으로 피어나는 滿虛齋에서 보면
저기 보이지 않는
虛空에
무슨 울타리라도 있는 것일까!
마을에서 산 따라 조금 들어왔을 뿐인데
모든 소리들이 걸러지고 닦여져서
딴 세상 같은 고요…….
秀澗橋를 건너다
문득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무성산은
산의 커다란 마음을 조금씩 녹여
滿虛瀑으로 흘려보내서
천둥 같은 소리로 노래할 때나
가는 한숨으로
잦아들 때나
인생의
차고 비움도 滿虛齋에 서면
폭포 소리에 녹아
물안개로 떠돌아라.
2012. 12. 29
滿虛齋(만허재)-충남 공주시 사곡면 회학리에 있는 엄기환 화백 화실
글
우수憂愁
그대에게 다가가는 길은 끊어지고
오늘따라 어둠은 장막처럼 가로막아
창문에
비친 불빛만
바라보며 서 있다.
글
따뜻한 가을
아파트 안 도로를 차로 달리다가
다리 다친 비둘기 가족을 만나면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선다.
경적을 울리면
아기 비둘기 놀랄까봐…….
산을 오르다가
허리 구부러져 누운 들국화를 보면
발을 멈추고 튼튼한 이웃에 기대어 준다.
가벼운 바람에도
몇 번이나 뒤돌아본다.
잠시만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내 따스한 마음 머물 자리가 얼마나 많은가.
조그마한 나의 온기가
다리가 되고, 날개가 되고
숨결이 되어줄 사람 얼마나 많은가.
단풍잎 붉은 기운이
핏줄을 타고 들어온다.
바람은 차도 가을은 따뜻하다.
2012, 10, 6
글
소나기 마을에서
엄 기 창
가을 햇살이 눈부시어
산새 소리 몇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목넘이고개 올라가 보면
아련한 사랑 이야기
노란 마타리 꽃잎으로 피어난
거기 소나기 마을 그림처럼 있네.
눈 씻고 찾아봐도
소녀는 없고
순원의 유택 앞에 가만히 서니
인생이여!
삶은 무지개 빛 향기 같은 것,
수숫대 엮어 만든 초막 속에
쪼그려 앉아
하루에도 몇 번씩 소나기로 씻어낸
맑아서 눈물 나는
사랑으로 살고 싶어라.
2012. 10. 27
글
중추절 하루
추석빔을 입어야
발걸음에 신이 났다.
아버지를 따라
장다리골 할아버지 댁에
차례 지내러 가는 아침
뒤뜰 벌판 황금빛 물결 밟고 오는
바람만 보아도
배가 불렀다.
제사보다 잿밥에 정신이 팔려
넋 놓고 서 있다가
아랫말 당숙에게 꿀밤 맞고
눈물 찔끔 흘리며 보는 제사상에는
에헴 하고 앉아계실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사과, 배, 대추, 감이 먼저 보였다.
골목길 울리는 풍악소리 신나게 따라다니다 보면
어느새
부엉이 울음소리가 동편 산마루에 둥근 달을 불러올리던
어린 날의 꿈같던 하루
모든 날이 한가위만 같았으면……
도회의 잿빛 하늘, 이순이 넘은 나이에도
중추절 아침이면 어깨춤 절로 난다.
글
캘리포니아의 꿈
엄 기 창
지금도 우리는 잊을 수 없네.
캘리포니아의 끝없이 넓은 가슴과
눈빛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던
그곳 사람들의 다정한 마음을…….
샌프란시스코 만(灣)을 따라 돌며
민둥산을 볼 때만 해도
초록빛 연봉(連峰)이 윤기 나는 바람에 펄럭이는
우리 금수강산(錦繡江山)에는 견줄 수 없었지.
롬바르트 언덕에 올라
정갈하게 꾸며진 도시를 바라보거나
요세미티 공원에서
웅장한 산세에 압도되었을 때 우리는 예견(豫見)했었지.
하루 종일 달려도 끝이 안 보이는
캘리포니아의 대 농장 지대
윤기 나는 열매가 태양에 익어가는
아몬드 밭과 포도밭 그 광막한 들판을.
사막을 막고 선 굴강한 사나이의 팔뚝
씨에라네바다 산맥의 발끝을 지나
모하비 사막으로 들어서면
세상은 참으로 넓고 광막하구나.
사막을 꿰뚫고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불가능을 일궈가는 굵은 땀방울을 보았네.
서두르지 않고 죽은 땅을 살려 가는
콜로라도 강물 같은 끈기를 보았네.
부에나 파크 하이스쿨, 스탠포드 대학의
캠퍼스에서 우리는 꿈꾸었지.
저 넓고, 웅장한 캘리포니아, 사나이의 강인한 힘을
우리 아이들 심장 속에 심어주는 꿈을…….
글
서둘러 떠난 사람
- 김명녕 교수님을 떠나보내며
엄 기 창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하여 잔을 드노니
그대는 어느 꽃 피는 마을에서 몸을 쉬느뇨.
무뚝뚝한 웃음도
향기롭던 사람아
돌아가는 길은
마라톤처럼 천천히 가지
단거리 달려가듯 서둘러 가서
사랑하는 사람들 눈에
장맛비만 쏟아놓고
할 말 하나 못 전하게 하는 건 무슨 심술이뇨!
다정한 목소리로
‘엄선생’
부를 것 같아
숨죽이고 둘러봐도
그대 떠난 세상 변함없어 서러워
물 젖은 눈으로 서녘 하늘 바라보니
황금빛 노을 사이
그대 가는 뒷모습 보이네.
2012.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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