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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민들레 편지
오늘 밤 띄워 보내는
홀씨 한 올엔
전화로 드릴 수 없는
내 사랑 진액만 담았습니다.
달빛 파도 타고
날고 날아서
두견새 각혈처럼
그대 창문 두드릴까요?
밤새 뒤척이는
그대의 꿈밭 머리에
어둠 깎아 빛을 세우는
까치 소리 한 소절 싹틔우고 싶어
지난겨울 눈보라에
씻고 씻어서
남모르는 담 밑에서
몰래 키운 마음 한 포기
뿌리 떼고 줄기 떼고
향기마저 걸러내고
꽃 중에도 가장 간절한
심장만 보냈습니다.
2014. 3. 26
글
독도
그리움의 높이만큼 해당화 꽃 하나 켜고
피멍울 속울음을 파도에 갈고 갈아
대양의 폭풍우 향해 질긴 날을 세운다.
먼 수평 하늘가에 흰 돛 한 폭 나부끼면
설렘을 먼저 알고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
사랑은 사치이로세. 마음 다시 다잡는 섬.
2014. 3. 13
글
황사黃砂
제주에서 날아올라 청주 공항 오며 보니
바다도 산도 마을도 황사에 잠겨 있다.
봄 물기 오른 산하가 딸꾹질을 하고 있다.
옛날부터 찾아오던 봄 불청객 고비 황사
대륙의 몸부림에 독기까지 배어 있다.
뻐꾹새 울다 목메어 자지러진 회색 빛 숲.
집집마다 창 내리고 앞산도 멀어지고
비질 된 골목처럼 비어가는 반도의 거리
일찍 핀 나뭇잎들만 분 바르고 서 있다.
차 한 대 없던 옛날도 편서풍 따라 봄에
서해 건넌 모래 먼지 송화처럼 내렸는데
증명할 방법 있냐고? 후안무치한 놈들!
2014. 2. 2
글
천 년의 미소微笑
불이문不二門 들어서니
사바는 꿈 밖에 멀고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磨崖佛
햇살 같은 미소,
암심巖心으로 질긴 뿌리를 내려
천 년을 깎아내도 웃음은 못 지우고
어깨 팔 떨어진 조각만
세월 흔적 그렸다.
그 웃음 퍼내다가
마음에 새겨 두고
잘 적 깰 적 떠올리며 웃는 연습을 한다.
오늘도 아픔이 넘쳐나는 거리에
천 년을 지워지지 않는 마애불磨崖佛, 그 미소를
등불처럼 환하게 걸어놓고 싶다.
2014. 2. 26
글
누님의 수틀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을
다락방 구석에서
오십 년 지나 찾아냈는데
누님이 수놓았던 꿈밭 머리에
내 꿈도 얼룩처럼 피어있었다.
봄나물 향기 캐던 골짜기에는
첫사랑의 산수유꽃 벌고 있었고,
모깃불 향기 안개처럼 흐르던 밤
지천으로 반짝이던 개구리 울음은
별이 되려 반딧불로 솟아올랐다.
누님이 수놓았던 십자수 속에
회재 고개 너머로만 한없이 뻗어가던
그리움의 바람도 불고 있었고,
끼니를 걱정하던 어머니의 눈망울과
몇 방울의 내 눈물 쑥대풀로 키워주던
구성진 소쩍새 울음 깨어나고 있었다.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엔
비어서 더 가득한 내 어린날이
색실보다 더 고운 내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살아나고 있었다.
2014. 1. 24
글
첫사랑
첫사랑은 늘
누런 코 훌쩍이던 일곱 살
코찔찔이 시절에 온다.
삘기를 뽑아도
찔레를 꺾어도
엄마 얼굴보다 먼저 아른거리던
마을 누나의 얼굴은
매운 세월의 바람 속에
덧없이 시들었다가
인생이 저무는 예순 살 무렵
어느 깊은 산사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슬픈 전설을 만나면
아픈 옹이처럼 심박혀
움츠러들었던 그 어린 날 진달래꽃은
불길처럼 피어나
온 산을 물들이라 한다.
모든 것을 빨아먹는
늪인 줄 알면서도
온몸을 던져서 투신하라 한다.
2014. 1. 30
<대전문학> 2014년 봄호(63호)
글
思父 一曲
눈길
아버님 제삿날 저녁 때늦은 春雪로
설화 곱게 피어난 연미 고개 넘으면서
雪花 속 아롱거리는 아버님 모습을 본다.
개학 전날 暴雪로 교통이 두절되어
오십 리 넘는 公州 아들 혼자 가는 길에
마음이 애틋하셔서 따라 나선 아버지.
눈보라 칼바람에 온몸 꽁꽁 얼으셔서
우성 지난 길가에 주저앉아 떠시면서도
내 옷깃 여며주시던 모닥불 빛 그 손길
금강 건너 도심에 한 등 한 등 켜질 무렵
“네 덕분에 먹고 싶던 짜장면 먹는구나”
허기진 젓가락 들어 덜어주던 아버지
이제는 짜장면 천 그릇도 살 수 있네.
짜장면 잡숴주실 아버님이 안 계시네.
춘설은 풍요로워도 구름처럼 허전한 길.
2014. 1. 10
글
닭서리
친구 부모 원행 간 집 동네 조무래기 모두 모여,
가위 바위 보로 술래를 정해 닭서리를 하였는데, 암탉, 수탉 서너 마리
가마솥에 푹푹 삶아 미친 듯이 뜯다 보니 백골만 다 남았네.
아침에 닭장에 가신 어머니 비명소리에 혼백이 다 날아가 소화된 닭이
넘어올 듯…….
2013. 12. 15
글
동행(同行)
누군가 새벽 산길
혼자 넘은
외발자국
그의 삶에 기대면서
그의 마음 밟고 간다.
외로운
눈길에 깔아놓은
털옷처럼 따스한 정.
닫은 문 귀를 열면
앞서 간 이
내미는 손
어디선가 밀어주는
함성 소리 밟고 간다.
고갯길 막막하여도
인생은 동행이다.
2013. 12. 11
글
어느 가을 날
회초리를 놓고서
국화꽃을 들고 간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하늘빛을 닮은 가을날에
교실 구석엔
아직도 오지 못한 한 아이의 자리
어둠에 묻혀 있고
일찍 들어선 겨울이
군데군데 눈처럼 쌓여
그림자를 만드는데
땡감 맛 논설문을 배울
교과서는 덮어놓자.
꽃물 번져가는 교정의 나무들 꿈꾸는
무지개 빛깔 시 한 수 읊어보자.
국화 향 은은한
시로 닦아낼 수 있는 그늘이
아주 작더라도
한 발짝 먼저 나가지 않으면
어떠리.
아이들 마음이 풍선으로 떠올라서
하늘에 닿을 수 있으면 그만이지…….
2013.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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